삼국통일 과정과 그 의의
- 최초 등록일
- 2020.07.22
- 최종 저작일
-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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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통일 과정과 그 의의를 적은 보고서입니다.
목차
1. 삼국통일 과정
2. 삼국통일의 의의
3.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삼국통일과정
1) 나·당 연합군 결성(648년)
: 645년, 당 태종은 고구려를 총공격했지만 안시성에서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인해 퇴각하였다.
그 후 648년, 고구려와 동맹을 맺는 데 실패한 신라가 김춘추를 당나라로 보내서 당 태종에게 함께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신라는 삼국에서 고립된 상태였고, 당나라도 고구려를 공격하는데 실패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위아래로 공격을 하면 고구려를 무찌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당 태종은 신라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고구려와 백제를 차지한다면 대동강 북쪽은 당나라가 가지고, 남쪽은 신라가 갖기로 약속하였다.
2) 백제 멸망(660년)
: 백제는 의자 왕대 후반에 이르러 내외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내부적으로는 의자왕의 지나친 독단과 귀족층의 분열로 정치가 어지러워졌다.
이런 백제의 내분을 눈치챈 신라와 당나라는 660년, 각각 다른 경로를 이용해 백제를 공격하였다. 신라는 대장군 김유신과 5만 대군이 출정하였고, 당나라군은 소정방이 거느린 13만 대군이 출정하였다. 신라군은 탄현에서 백제로 진격하였고, 당나라군은 산둥반도에서 출발해 백강으로 들어왔다. 나·당 연합군은 7월 10일을 수도 사비성 공격의 날로 정하고 사비성 남방에서 합세하기로 하였다.
백제는 장군 계백으로 하여금 우선 신라군을 저지하게 하였다. 5,000명으로
결사대를 조직해 신라군을 맞아 싸웠으나, 결국 계백의 결사대는 패배로 끝났고 신라군은 당나라군과 함께 수도로 진격하였다.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사비성을 버리고 웅진성으로 피난하였다. 왕자 태가 왕이 되어 항전하였으나, 곧 성은 함락되었다. 결국 백제는 건국한지 31대 678년 만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참고 자료
네이버지식백과, “삼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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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겸,『2016 개념완성 진한국사』, SKYEDU(2014), 24-2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