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고려 후기의 모습
(1) 무신 집권기
(2) 삼별초의 등장
3. 몽골의 침략
(1) 몽골의 성장과 고려 침략
(2) 침략의 과정과 결과
4. 삼별초와 대몽항쟁
(1) 삼별초의 대몽항쟁
(2) 삼별초 항쟁의 의의
5.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머리말
우리는 흔히 고려를 항쟁(抗爭)의 역사를 지닌 나라로 기억한다. 고려는 왕조의 존속기간 약 500년 동안 거란, 여진, 몽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목민족의 침입에 맞서 싸워 나라를 지켜냈다. 특히 몽골은 13세기 칭기즈칸의 주도로 유라시아 전역을 호령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하며 고려마저 정복하기 위해 무려 여섯 차례의 침입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고려의 끈질긴 저항 탓에 완전히 복속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런 탓에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 격하되어 오랜 시간 내정에 간섭받아야 했다. 그 길고 지난한 고려 항쟁 역사의 중심에는 삼별초(三別抄)가 있었다. 그들은 조정에서 원에 항복을 결정하고 개경으로 환도하였음에도 이에 불응하고 지역을 옮겨 가며 최후의 항전을 이어갔다.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일어난 전쟁을 겪으며 고려는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본 발제에서는 변화하는 고려 후기의 상황과 몽골의 침략, 그에 대응하는 삼별초의 항쟁과 의의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2. 고려 후기의 모습
(1) 무신 집권기
일반적으로 고려 후기의 시작은 무신정변 이후로 여겨진다. 무신 집권기는 문벌귀족의 사치와 향락, 무신에 대한 차별이 심화하는 귀족사회의 모순에서 시작되었다. 문벌귀족의 권력독점이 공고해지고 귀족정치가 절정기에 이르면서 고려는 모든 면에 걸쳐 황금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귀족사회의 내부적 모순이 축적되면서 기존의 정치 질서가 동요하였다. 인종(仁宗) 재위 당시 일어난 이자겸의 난(李資謙─亂)과 묘청의 난(妙淸─亂)은 귀족사회가 붕괴하는 발단이 되었다. 결국, 1170년 정중부(鄭仲夫)가 일으킨 무신정변으로 인해 문신의 귀족정치는 막을 내리고 무신정권이 성립되었다. 무신들은 정변으로 집권한 후 문신들을 죽이고 의종을 폐위한 뒤 명종(明宗)을 옹립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주요 관직을 차지하여 문신을 억압하고 왕권을 약화하였다.
참고 자료
김광철, 「정방의 창으로 바라본 고려 후기 정치와 사회」, 『역사와 현실』33, 한국역사연구회, 1999.
김낙진, 「고려 무인 정권기 명종의 현실 인식과 정치운영」, 『한국사연구』168, 한국사연구회, 2015.
강봉용, 「몽골의 침략과 고려 무인정권 및 삼별초의 그 동아시아적 의의」, 『동양사학연구』115, 동양사학회, 2011.
이정신, 「원 간섭기 원종·충렬왕의 정치적 행적」, 『한국인물사연구』10, 한국인물사연구회, 2008.
이익주, 「고려말의 정치·사회적 혼돈과 신흥사대부의 성장」, 『한국사 시민강좌』35, 일조각, 2004.
오영선, 「역사 속의 정치와 군(軍) 무신정권과 사병」, 『역사비평』, 역사비평사, 1995.
문경호, 「삼별초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변론」, 『한국사학보』59, 고려사학회, 2015.
윤용혁, 『무인정권, 몽골, 그리고 바다로의 역사 삼별초』, 혜안,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