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2. 경기전의 역사적 배경
3. 경기전의 공간적 구성
4. 경기전의 건축적 특성
5. 한국건축 공간의 특징
6. 경기전 단면도
본문내용
1. 서론
이번 한국건축사 레포트의 주제로 삼은 것은 전주시 완산구에 위치한 경기전이다. 경기전을 레포트 주제로 정한 이유는 태조의 어진을 모시기 위한 건축이라면 조선건축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였고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였다. 전란에 의해 불타 다시 지었을지라도 조선의 정체성을 건축적으로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6월 첫째 주 토요일에 경기전에 직접 방문하였고 근처에 있는 경기전 부속채와 오목대에도 들렀다.
2. 경기전의 역사적 배경
'경사스러움(慶)이 터잡은(基)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경기전은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이다. 태조의 진전은 영흥, 경주, 평양, 전주, 개성 이렇게 5곳에 있다. 이 5곳의 도시는 전 왕조의 수도였거나 태조의 행적과 관련이 있어 정치적으로 중요한 취급을 받았던 곳이다. 그 중 전주는 조선의 국성인 전주 이씨의 본가이다. 완산부의 요청으로 경주에 위치하였던 태조의 영정을 모사하여 1410년에 영정을 봉안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불에 타 버렸고 광해군 때 다시 복원하였다.
3. 경기전의 공간적 구성
경기전의 배치는 위측사진과 같다.
외신문-내신문-정전이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정전의 좌우에는 익랑과 월랑이 연결되어 있다. 내신문은 외신문과 규모는 같지만 좌우에 첨각이 붙어있다. 진전에서 의례를 행할 때 향관은 외신문과 내신문 사이의 마당에서 대기하다가 의례가 시작되기 전에 내신문 안으로 들어가 각자 위치에 자리한다. 모든 의례가 행해지는 내신문은 의례 공간을 구분하는 문이다. 영정을 봉안해 놓는 정전은 재례를 지내는 건물로 삼면을 벽으로 만들고 평사시엔 문을 닫아놓았으나 이러한 구조는 내부에 습기가 발생하여 영정을 훼손시키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세종때에 이르러 영정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전 침실 바닥에 온돌을 설치하여 습기를 제어하고자 하였으며 한계가 있기에 평시에는 궤 속에 넣어 온돌위에 놓았다가 필요시에만 꺼내어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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