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로 본 정약용의 실학론과 애민사상』
- 최초 등록일
- 2020.06.07
- 최종 저작일
- 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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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들어가며
Ⅱ.정약용의 실학론
1. 실학의 발원
2. 성호와 정약용
3. 정약용의 실학론
Ⅲ. 정약용의 애민사상
1. 정약용의 애민
2. 정조의 애민
Ⅳ. 위민사상의 목민심서
1. 목민서 치군요결과 목민심서
2. 목민심서
Ⅴ.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실학자다. 정조(正祖)때부터 문신으로 있었으나, 순조(純祖)때부터는 삶의 대부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정약용은 긴 유배기간 동안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와 일표이서(一表二書)를 포함해 총 500여 권을 저술했다. 특히 목민심서는 48권 16책의 방대한 내용으로 목민을 위한 정치와 행정에 필요한 모든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다. 수령이 관장하는 실제 업무와 백성들의 삶과 직결되는 부분이 많아 그의 백성 사랑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의 실학론과 목민심서를 중심으로 본 애민사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한다.
2. 정약용의 실학론
(1)실학의 발원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 이전에는 대체로 성리학(性理學)을 국가적 학문으로 여겨 대체로 많은 학자들이 성리학 연구에 생애를 바쳤다. 그러나 당시 가장 뛰어난 경세가이자 성리학자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는 조선이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조선의 문물을 ‘경장(更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이의 판단으로는 국란이전에도 나라를 그대로 두면 망할 정도의 위기라는 인식에 도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약용의 사숙 스승인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의 ‘논경장(論更張)’에서는 조선 실학의 학문적 기원이 어디서 나왔는지 설명해 준다.
성리학이 주된 학문으로 자리 잡아 온 나라 학자들이 정주(程朱)의 성리학에 온 마음을 기울이던 시대에 이이만은 그대로 있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나라를 건지기 위해서 법과 제도를 고치고 바꾸는 경장만이 최고의 방책이라고 주장했으니, 조선의 실학사상은 실제로 거기에서 발원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2)성호 이익과 정약용
이이나 이익·정약용은 모두 유학자였으며, 그들 모두는 기본적으로 공맹(孔孟)의 철학과 사상을 근본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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