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며
2.신숭겸의 생애
3.장절공신숭겸묘역의 위치와 특징
4.장절공신숭겸 신도비
5.도포서원
6.나가며
본문내용
1.들어가며
신숭겸은 전라남도 곡성군 출신으로 강원도 춘천으로 이주해 살다가 궁예의 휘하에서 싸우다 나중에 왕건의 쿠데타를 돕고 고려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면서 무장이다.
신숭겸은 후백제군이 신라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태조왕건과 함께 신라를 돕기 위해 원군을 가는 도중에 경상도 공산(지금의 대구)에서 후백제군을 맞아 싸웠으나 전사하였다.
이를 슬피 여긴 태조 왕건이 신숭겸의 시신을 수습하여 묘를 세웠고 후대에 이르러서도 신숭겸을 추모하였다.
지금부터 장절공신숭겸의 묘와 후대에 세워진 신도비와 도포서원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2.신숭겸의 생애
신숭겸은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전라남도 곡성군 출신이며 체격이 크고 무예에 뛰어났고 용맹스러웠다. 유망농민이 되어 떠돌다가 강원도 춘천에 들어가 살았다고 하는데 평산신씨의 일족들은 신숭겸의 출신지를 춘천으로 내세우고 있다.
신숭겸의 출신지로 알려진 곡성은 후삼국 시기 때 후백제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에 의해 통일된 이후에도 한동안은 반(反)고구려적인 정서가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반면에 신숭겸이 한때 거주하였고 마침내 그로 하여금 궁예군에 가담하는 계기를 제공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춘천지역은 옛 고구려의 영역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궁예의 세력권 안에 들어있었고 후일 그를 계승한 왕건 정권하에서도 또한 그러하였다. 말하자면 궁예휘하에서 군사 활동으로 출세해 마침내 고려왕조 개창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신숭겸이나 혹은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그 시조 신숭겸을 잃었던 평산신씨 일족으로서 그처럼 내내 후백제의 영역에 속해 있던 곡성과 같은 지역을, 자신 내지는 자기들 시조의 출신지로 내세우기를 꺼려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신숭겸은 언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고 기록에도 없다. 다만 신라 말 혼란한 시대에 호족의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신숭겸의 출생신분에 대해서 많은 의문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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