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서양사 연구, 18세기의 정치와 국제체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정치와 국가
1. 18세기 초의 정치 지도
2. 국가 형성과 18세기의 정치
1) 전쟁과 국가 지출의 증대
2) 행정국가의 등장
3) ‘고위 정치’와 정치 계급
3. 계몽절대주의
4. 대의제 정치
5. 정치와 민중
Ⅲ. 국제질서와 전쟁
1. 국제체제
2. 군사체제와 전쟁
3. 18세기의 전쟁
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
2) 7년 전쟁
Ⅳ. 결 론
Ⅴ.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18세기는 흔히 루이 14세의 사망(1715년)으로부터 나폴레옹의 몰락(1815년)에 이르는 ‘긴 18세기’를 말하기도 하고, 프랑스 혁명(1789년)에 이르는 ‘짧은 18세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짧은 18세기’를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이 시기에 가장 두드러진 사실의 하나는 국가 권력의 성장과 확대이다. 통합된 영토, 명확한 국경선, 대내외 주권, 합법적 무력의 독점을 갖춘 근대 권력국가는 이제 기지의 사실이 되었으며, 18세기를 지나면서 사법과 평화의 유지라는 전통적인 영역을 넘어 군대, 재정, 일반 행정을 통해서 삶의 더 넓고 깊은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지배자들은 전문적인 관료제를 키워 행동반경을 넓혀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지역에 국한되지만 동질적인 신민이 형성되어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부상할 수 있는 역량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국가 권력의 성장은 국제정치에도 반영되어 18세기 유럽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따라서 본고는 ‘짧은 18세기’에 이루어진 국가 권력의 성장과 확대, 그리고 이로 인한 국제정치에 대해 알아보려한다.
Ⅱ. 정치와 국가
18세기는 정치의 근대적 개념과 국가 이념의 형성에서 중요한 단계를 차지한다. 18세기 초만 해도 유럽의 통치자들 대부분은 국가를 가산으로 여겼던 세습군주들이었다. 그러나 18세기가 끝날 때쯤이면 도처에서 군주제의 신성성만이 아니라 군주제 자체가 위기에 처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열기가 가라앉은 19세기 초가 되면, 프랑스와 폴란드를 제외한 유럽 통치자들의 정치 지도는 한 세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유럽의 많은 군주들이 새로운 정치에 양보를 한 결과였다. 18세기만 해도 국가는 특정 가문의 세습재산인 동시에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법인격이라는 이중성을 강하게 가졌다. 18세기가 끝나면서 전자의 성격은 급속히 약화 되었고, 국가는 이제 통치자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실체로 인식되었다. 통치자와 신민의 관계를 보는 시각 역시 달라지면서, 진정한 의미의 근대 국가가 탄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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