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정리 1
- 최초 등록일
- 2020.05.10
- 최종 저작일
-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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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심훈은 1901년 9월 12일에 태어나 1936년 돌아가셨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소설, 시인 등의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해풍(海風)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다방면에서 문학 활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심훈에 대한 연구의 대부분은 그가 남긴 소설, 특히 「상록수」를 비롯한 농촌 계몽 서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의 시에 대한 논의 역시 「그날이 오면」 등의 저항적 측면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세계는 그 곳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각각의 시기마다 어떤 시가 창작되었는지를 밝히고, 각 시기의 작품에 담긴 사회역사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는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에 3·1운동에 가담하여 3월 5일 헌병대에 잡혀 투옥되었고 같은 해 7월에 집행유예로 출옥하였다. 이 사건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했으며, 1920년 말 중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 1921년 북경에서 상해, 남경 등을 거쳐 항주 지강대학(之江大學)에 입학했고, 1923년 중국에서 귀국하였다. 중국에서 그는 이전까지 알지 못한 거대한 문화와 만나게 되었으며, 귀국 직후 신극연구단체를 조직하였으며 ‘염군사’의 ‘극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일석 이희승 선생을 찾아가 한글 맞춤법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귀국 때까지 그는 신채호, 여운형 등 민족, 사회주의자와 만나 다양한 문학의 기틀을 잡았다. 카프의 창립 멤버. 검열로 인해 이름을 바꾸거나 작품 제작 중 중단 된 경우가 있었다.이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하면서 소설 창작과 영화 제작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1927년 봄에는 영화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6개월간 체류하면서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2년 기자 생활을 비롯해 사회 활동 대부분을 청산하고 부모님이 계신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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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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