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忠惠王)의 왕권강화
- 최초 등록일
- 2020.05.09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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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충혜왕(忠惠王)의 왕권강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序言
2. 本文
1) 충혜왕에 대한 평가
2) 충혜왕의 왕권강화
3. 맺음말
본문내용
1. 序言
고려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혜왕을 희대의 폭군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 일 것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高麗史에 기록된 기사를 보면 충혜왕이 거의 매일 사냥과 격구을 일삼는등 정사는 돌보지 않는 폭군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역사를 배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엄격한 사료비판과 역사가의 사관 및 비판의식이다. 특히 고려사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왕명에 의해서 지어진 역사서이므로 다른 사서보다 더욱 엄격한 비판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충혜왕의 정치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발제에서는 충혜왕의 정치를 다른 시각에서 전개해보고자한다.
2. 本文
1) 충혜왕에 대한 평가
충혜왕은 충숙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28번째 임금으로 즉위한 인물이다. 충혜왕은 이미 알려져 있듯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황음무도한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절요』25 충혜왕편에 보면
성품이 豪俠(호협)하여 말 타고 활쏘는 것을 좋아하였고 財理(재리)에 밝았으며 慌淫無度(황음무도)하였다. 群小(군소)가 뜻을 얻고 충직한 신하들은 배척을 당하였다. 만일 바른 말을 하는 자들이 있으면 반드시 베어 죽이므로 사람들이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아무도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의 史家(사가)들에게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계승되면서 충혜왕은 황음무도한 인물이었다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서만을 근거로 충혜왕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가 失政(실정)을 행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이를 통해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엿보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충혜왕의 재위기간 2년이라는 것을 볼 때 원과는 그리 원만한 관계를 가졌다고는 볼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그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燕帖木兒(연첩목아)가 실각하고 그의 정적이었던 伯顔(백안)이 정치적 실력자로 대두하면서 상대적으로 왕권이 약화되고 충숙왕의 복위가 전개되면서 원에 의해서 강제로 폐위 당했다는 사실을 볼 때 元과 정치적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김당택, 『元干涉下의 高麗政治史』, 일조각, 1998
『高麗史』第三冊
전성희, 『인물로 읽는 고려사』, 청아출판사, 2000
『한국사』20, 국사편찬위원회, 1994
『高麗史節要』,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