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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원 간섭하의 고려와 일본정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몽고항쟁 이후 고려와 원의 관계
1) 원나라의 부마국, 고려
3. 원나라의 간섭형태
1) 정치적인 간섭
2) 경제적인 침탈
4. 일본정벌
1) 일본정벌의 배경과 준비과정
2) 제1차 일본정벌
3) 제2차 일본정벌
5.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고종 18년(1231)에 몽고의 제1차 침입을 시작으로 고려는 약 30여 년간 몽고와의 전쟁을 치렀다. 최씨 무인정권은 강화도로 천도까지 하며 항전의 의지를 나타냈고 몽고와 강화를 맺은 후에도 삼별초(三別抄)의 대몽항쟁이 이어졌으나 결국 몽고에 무릎을 꿇게 된다. 나라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황폐해졌고 백성들의 생활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몽고와의 기나긴 전쟁 끝에 고려는 몽고와 강화를 맺으며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이는 사실상 고려가 원(元)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는 시발점에 불과했다. 따라서 고종의 재위 상당기간이 몽고와의 전쟁기간이었다면 고종 말년부터 공민왕(恭愍王) 전까지의 시기는 원나라의 간섭기라고 볼 수 있다. 이 기간이 거의 100년에 이를 정도로 원나라는 고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으며 원나라의 압박으로 일본 정벌에도 원과 연합해서 출전하기에 이른다. 이번 주제를 통해 원나라가 고려에 어떻게, 어느 정도로 간섭했는지와 함께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몽고항쟁 이후 고려와 원의 관계
1) 원나라의 부마국, 고려
몽고와의 전쟁에서 고려가 몽고와 정면으로 대결한 것은 1차 침입 때뿐이었다. 이는 당시 지배층이 매우 소극적이고 자신들의 안정을 우선시했기 때문인데 거의 일방적으로 치러진 전쟁 끝에 1259년, 몽고는 고려와 강화를 맺고 본격적으로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몽고는 고려에 수많은 조공과 공녀를 바칠 것을 요구하며 고려를 압박하였다. 더불어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鮒馬國)이 되었고 당시 태자였던 원종(元宗)은 처음으로 원나라에 입조하기도 했다. 충렬왕(忠烈王)이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혼인한 후부터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자 고려는 원나라를 상국으로 모시게 되었고 따라서 원의 연호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관제나 왕실 용어 및 여러 가지 명칭에 대한 격식을 제후국에 맞게 낮춰야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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