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 최초 등록일
- 2020.04.23
- 최종 저작일
- 2019.06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 본 문서(hwp)가 작성된 한글 프로그램 버전보다 낮은 한글 프로그램에서 열람할 경우 문서가 올바르게 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최신패치가 되어 있는 2010 이상 버전이나 한글뷰어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개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동학농민혁명의 배경
1) 대외적 배경
2) 대내적 배경
3.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4. 동학농민혁명 개혁의 지향점
1) 사회적
2) 정치적
2) 경제적
5. 동학농민혁명의 인식 변화
1) 구한말~일제강점기
2) 해방~1950년대
3) 1960년대~1970년대
4) 1980~1990년대
6.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
7.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19C에 들어서서 조선 사회는 안으로 체제의 모순과 밖으로는 외세의 개항 압박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조선 지배층은 자구책을 구하지 않고 체제 유지와 백성에 대한 수탈만을 강화했다. 이에 각지에서 민란이 대대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등장한 것이 ‘동학’ 이었다. 이들은 초기엔 종교집단에 불과했으나 점차 반봉건적 개혁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동학에 합세한 민중들은 반봉건적 사회개혁을 추구하였으며, 일본의 침략에 대해서는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대일(對日) 농민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본 발제에서는 동학농민혁명(또는 갑오농민전쟁)의 전개와 인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알아볼 것이다.
2. 동학농민혁명의 배경
1) 대외적 배경
1876년 개항이래, 조선에서의 청,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침략 경쟁은 더욱 가열 되었다. 그러나 조선 지배층은 외세의 침략과 조선 내부가 당면한 과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였다. 이후,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은 국내의 상품생산과 유통구조에 변화를 야기하였으며, 그중 농업환경 변화는 농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그 결과 농민층들은 소작농이나 임노동자로 몰락했으며, 대지주들에 의한 지주제 강화는 자발적 상품화폐경제로 발전을 하고 있던 조선 사회를 봉건적으로 되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외세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경제침략 또한 전개되었다. 일본과 청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섬유 등 중개무역을 통한 독점에서부터 시작하여 국내에 점포를 설치하고 상인들의 유통과정에 개입해, 이권을 침탈하는 등 제국주의적 상품유통구조를 형성했다. 이후, 기존 상권을 장악해왔던 시전상인과 경강상인은 몰락했으며, 이들과 연계되어 있던 여각이나 객주는 외세의 상권에 기생하여 존속하는 등 점차 제국주의 상품화폐경제에 종속되어갔다. 이에 조선 상인들은 동맹철시와 구매거부 등 저항 운동을 전개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오히려 일본 주도의 화폐경제체제가 굳혀지면서 상업과 관계없는 농민층까지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이진영,『동학농민혁명의 동아시아적 의미』,「동학농민혁명 인식의 변화와 과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2002.
고동환 외,『한국사 39』,「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국사편찬위원회, 2003.
김혜승,「동학정치사상과 갑오농민운동」, 2005.
한영우,『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