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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재일조선인들의 국적선택과, 그 선택을 결정하게 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 영화 ‘박치기’를 통해본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중심으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I. 서론
가. 연구 목적
나. 연구 방법
II. 본론
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완벽한 ‘타자의 삶’
나. 재일 조선인들의 국적 의식과, 선택에 있어 영향을 미친 각국 정부의 정책들과 조총련의 활동
Ⅲ.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가. 연구 목적
재일(在日)조선인들은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 또는 자의적인 이유로 일본에 이주한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광복이후에 본국으로 돌아간 경우도 존재하지만, 한일 분단과, 6.25전쟁, 그리고 같은 동포나, 일본인 여성을 만나 결혼한 이유로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재일조선인들은 타자(他者)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무수히 많은 규탄과 비난, 차별을 받아왔다. 또한 그들은 6.25전쟁과 남북한의 분단, 일본의 국적처리 문제 등으로 그들의 명확한 뿌리까지 자가규정(自家規定)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며 민족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영화 ‘박치기!(2004)’는 1960년대에 교토지역을 배경으로 존재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삶과, 북송에 관한 심오한 주제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들었던 의문점은, 민단 활동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음을 고사하고, 영화 속에서 나왔던 재일조선인들이 대부분 자신의 정체성을 북한으로 규정하였으며, 주인공인 ‘리안성’ 또한, 북송사업으로 갈 수 있는 북한으로 가서 자신의 꿈인 축구선수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은 북한을 자신들의 ‘고향’이자 ‘조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분명히,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 중에서는 제주도를 포함하여, 경상도나, 전라도 등 지정학적 위치상 현 북한정부의 영토가 아닌 곳의 사람들도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자신들의 조국을 북한이라고 규정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나. 연구 방법
재일조선인, 또는 일본어로는 자이니치(在日, ざいにち). 그들은 현재 재일교포 또는, 정치적 이해에 따라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조국 분단 이전에 통용되던 명칭이 ‘재일조선인’이었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자이니치들을 ‘재일조선인’으로 통일할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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