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공자
(1) 공자와 육경
공자는 유자이며 유가의 창시자이기도 한다. 공자는 후대에 저술을 남기려는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육경을 저술했다고 볼 수는 없다. 육경은 공자 이전부터 내려온 문화유산이며 주대 초기 봉간시대 귀족을 가르치기 위한 기본 교재였다. B.C 7세기경부터 봉건제도가 붕괴되면서 귀족들의 사범들이 평민 사이로 흩어지기 시작했으며 장례, 제례, 혼례 등의 의식이 있을 때 경전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2) 교육자로서의 공자
공자의 교육과 서술 정신은 “본받아 서술하기는 하나 새롭게 짓지는 않는다.”이므로 제자들도 이를 계승했다. 따라서 현존하는 13경의 대부분은 제자들이 서술하고 전수하여 원문에 주소를 달아서 확대된 것이다. 공자를 신학파의 창시자로 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3) 정명론
공자는 질서 있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명을 확립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실제 사물의 이름과 그 내실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이름을 지녔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 정명론의 요체이다.
(4) 인의
의란 어떤 상황의 당위성을 듯하는 무상명령이다. 그리고 이 의무의 구체적 내용은 남을 사랑하는 것, 즉 인이다. 공자는 인을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으며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 하였다.
(5) 충서
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해야 하며 자기가 서고 싶어도 남을 세워주며, 자기가 어떤 목적을 이루고 싶으면 남도 이루어지도록 해 주는 것이다. 공자는 이를 충이라고 하였으며, 소극적인 면을 서라고 하였다. 즉, 인의 실천방법으로 ‘충도의 서’를 강조했다.
(6) 지명
지명은 명을 안다는 의미로 현존하는 세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자기의 외적인 성공이나 실패를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현명한 사람은 의혹이 없고, 어진 사람은 근심이 없고, 씩씩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라는 말을 통해서 지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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