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17세기 후반 김만중의 현실인식
- 최초 등록일
- 2003.09.19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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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문제제기
2. 風俗面에서의 現實認識
3. 政治面에서의 現實認識
4. 마무리
본문내용
1. 문제제기
17세기 후반은 임병 양난의 충격에 대처하는 시기였다. 많은 학자, 관료들은 연이은 외세의 침략 및 동아시아 국제질서 재편의 와중에서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학문적․정치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그 대립의 중심부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西浦 金萬重(1637:인조15-1692:숙종18)이었다. 당시 政爭이 격렬하였던 탓에 그는 세 차례, 총 4년 6개월의 유배 생활을 하였으며, 마침내 유배지에서 타계하였다.* 이 논문은 2000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KRF-2000-045-A21004).
**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특별연구원.
西浦는 1665년(현종6) 庭試에서 장원급제하여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1692년 타계하였다. 정치 활동 27년 동안 서포는, 강원도 금성(1674:현종15년 정월-4월), 선천(1687년:숙종13년 9월-이듬해 11월), 남해(1689:숙종15년 윤3월-1692:숙종18년 4월)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중종조 이후 귀양․해배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점을 고려한다면, 서포의 유배 기간은 정치 활동 기간에 포함된다.
본 논문은 서포가 17세기 후반 정쟁의 핵심 인물이었다는 것에서 논의의 실마리를 풀려고 한다. 당시 여느 지식인들과는 달리 서포는 정치 활동과 소설 창작의 두 영역에서 골고루 자취를 남겼다. 이것은 그가 당대 현실 문제에 대해 일정한 가치관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러한 것을 문학 작품에 형상화하였음을 시사한다. 여기에 서포의 現實認識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놓여 있다.
주지하다시피 서포에 관한 연구 성과는 그의 한시 및 소설의 작품 세계, 전기적 생애 등 다방면에서 축적되어왔다. 그 중 서포의 현실인식과 관련한 연구 업적 및 그 한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포가 인현왕후․장희빈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대결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 이 논의는 현상적인 차원에 그쳤다. 둘째, 서포가 당대 사회를 선악의 이분법적 틀로 제시하였다는 것. 이 논의는 유교의 보편적 심성론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서포의 현실인식의 역사적 특수성을 잡아내지 못하였다. 셋째, 서포가 군신 관계를 남녀 관계로 비유한 경향이 있었다는 것. 이 논의는 서포의 현실인식에 초점을 둔 것이라기보다는 작품 형상화의 기법에 초점을 둔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