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 중국문화산책 레포트: 중국과 조선의 과거제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9.12.30
- 최종 저작일
-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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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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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명청의 과거제
3. 조선시대 과거제도
4. 결론
본문내용
중국과 한국은 많은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문화는 오랜 기간 중국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었다. 단적인 예로 한국어 단어의 절반 이상은 한자어다. 이는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치우쳐있고 육로로 중국과 연결된다는 자연 지리적 특성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여기에 한반도가 몽골, 요동, 서역 등과 달리 중국처럼 농경사회였고 중국이 세계의 문화중심지 중 하나였다는 역사적 요인도 더해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전근대 한국의 왕조들은 삼국시대부터 적극적으로 중국의 문자, 종교, 제도,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고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왕조의 제도를 중국식으로 개조하면서 당의 3성 6부제를 모방한 2성 6부제와 과거제를 도입했다.
과거제의 도입은 고구려의 오부(五部), 백제의 대성팔족(大姓八族), 신라의 골품제(骨品制)로 대표되는 혈통에 근거한 관리임용제를 과거급제 여부에 따른 임용제로 교체하는 제도상의 큰 변화였다. 더 나아가 이는 혈통에 따른 신분제를 과거급제 여부에 따른 신분제로 대체하는, 지배계층 개편의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고려시대의 관리임용에서는 가문의 힘과 음서가 여전히 중요했다. 동시대 송(宋)이 관리의 절대다수를 과거로 확충하던 것과 비교하면 고려에서는 아직 과거제의 취지가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수(隨)대에 시작되어 당(唐)대에 널리 시행된 중국의 초기과거제 역시 관롱집단(關隴集團)으로 대표되는 혈통에 근거한 신분제를 완전히 타파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고려의 과거제는 과도기에 놓여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고려 의종(毅宗)대부터 무신정권기, 몽골침공기, 몽골간섭기를 거치면서 고려의 과거제는 한동안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공민왕대 들어 과거제로 등용된 정도전, 정몽주, 조준 등으로 대표되는 신진사대부는 고려 말 정국을 주도했다. 급기야 정도전과 조준 일파는 고려 말의 명장이자 군벌인 이성계(李成桂)와 손잡고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켰다.
참고 자료
사료
<현종실록>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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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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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료
중국의 인구변동과 사회변화, 동북아역사넷
조선의 인구변동과 사회변화, 동북아역사넷
공교육 난장, <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