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근대사] 천안문 서평(조너선 D 스펜스)
- 최초 등록일
- 2019.10.19
- 최종 저작일
-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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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천안문(조너선D스페스 作)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에서 다루고있는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깔끔하게 정리하려 노력했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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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편 쑨원은 망명이후 국가 재건 노력을 기울이며 민생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 체계를 한층 더 다져났갔다. 하지만 그는 실질적인 군사, 경제적 지원을 얻지 못한 채 군벌로부터 차례로 배신당하여, 동맹을 위해 중국공산당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던 그는 1925년 암으로 사망했다.
쑨원은 캉유웨이보다 더 급진적으로 중국 사회를 변혁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청조의 극복을 주장했으며 공화제의 실시를 이야기하였다. 중국 근현대에서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이후 국민당으로, 삼민주의로 이어져 당시의 사회상을 변화시키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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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치차오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왕조를 전복시키지 않고도 사회혁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인들을 지배하고 이끌어줄 강력한 정부의 출현을 요구하였으며, 중국을 폐허로 몰아간 사람은 개화반대론자들이 아니라 진보론자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 결과 그는 중국은 아직 급격한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입헌군주제야말로 가장 확실한 근대화와 성장의 지름길이라는 캉유웨이의 견해를 수용했다.
한편 혁명 후, 량치차오는 새 정부에 공식적으로 참여를 했으며, 사법총장에 취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모순적이게도 황제의 꿈을 꾸고 있는 위안스카이를 위해 각종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후 위안스카이가 대놓고 재정을 부활하자 여기에는 반대를 한다. 이후 량치차오는 소극적인 생활을 벌이다가 1929년 신장염으로 사망하였다.
량치차오는 캉유웨이와 더불어 중국을 입헌군주제로 이끌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한 때 재정을 주장하는 위안스카이 하에서 자신을 정당화시키기도 하였지만 결국은 제정반대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 량치차오와 같은 이들이 중국을 조금 더 변혁적으로 다가가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참고 자료
천안문 / 조너선D.스펜스 / 이산 / 1999.02.27 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