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현학 논쟁
- 최초 등록일
- 2019.09.01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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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맺음말 부분에 번호가 오타가 있지만...^^ 당시 이 레포트로 인해, 교수님께 인정받아 외국유학도 추천받았습니다.
목차
1. 머리말
2. 1923년대 논쟁의 주요 문제점
3. 양파의 과학에 대한 입장
4. 양파의 인생관
5. 논쟁의 추이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20세기 초반 중국에는 과학주의가 대단히 성행했다. 이것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우주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현상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모두 과학의 응용에 대하여 매우 흥미를 가지고,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과학으로써 전통적 가치체계를 대체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입장에서 과학(과학주의)은 밖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또한 과학을 소개하거나 도입하게 된 주요한 동기는 바로 병약한 중국을 부강하게 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화적 충돌·결합 등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근대 서양학문이 중국에 전래된 과정은 명말청초의 선교사들의 전래와 아편전쟁 이후 5·4운동시기까지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알아볼 과학화 현학 논쟁은 바로 반중체서용론과 과학주의의간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다. 5·4운동 이래 후스·천두슈 등은 전반서화론을 주장했고, 량치차오·량수밍 등은 동양문화(정신주의)·서양문화(물질주의)를 지적하였다. 특히 량치차오는 유럽사람들이 과학만능의 생각에 젖어 정신적인 요소를 배척한다고 보고, 이러한 인생관은 기계적 인생관이라고 하며 인류의 자유의지를 부인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과학정신이 있고 없음은 신·구 문화의 기준일 뿐, 동·서양 문화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참고 자료
신승하·임상범·김태승, 1998, 『20세기의 중국』, 서울대학교 출판부
리지허우, 1987, 『현대중국사상사론』, 한길사
정귀화, 1993, 「1923년 中國의 文化논쟁 : 科學과 玄學의 논쟁」, 『중국문제연구』 5, 경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이상화, 2009, 「1923년 中國의 ‘科學과 形而上學 論爭’에서 나타난 儒敎的 思惟方式 硏究」, 『유교사상연구』 35, 한국 유교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