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기독교 연합 봉사회
- 최초 등록일
- 2019.07.31
- 최종 저작일
-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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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기독교연합봉사회의 설립
2. 기독교연합봉사회의 사업
(1)농촌사업
(2)구호사업
본문내용
1945년에서 1950년대까지의 한국사회는 남북분단과 전쟁으로 구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대거 발생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 배경을 가진 외국원조 단체들이 내한하고, 일제 말 한국을 떠났던 선교사들도 다시 내한하여 선교활동을 재개하였다. 내한한 선교사들은 선교부간 연합사업을 구상했는데, 그것이 기독교연합봉사회(Union Chris
tian Service Center)의 설립으로 구체화 되었다.
기독교연합봉사회는 사회사업 및 농촌사업 분야의 연합사업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문서, 교육, 의료사업에서의 연합사업과는 다른 점이 있으며, 오랫동안 한국선교 경험을 가진 여러 교파의 선교부가 직접 설립한 기구라는 점에서 외국에 본부를 두고 한국에 파견된 외국원조 단체들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1950년대 연합운동이 쇠퇴하고 한국교회가 분열하고 있을 때 기독교연합봉사회는 교파간의 일치와 협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교회사적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1. 기독교연합봉사회의 설립
기독교연합봉사회의 창립은 1945년 이후의 남북분단 상황에서 그리고 한국을 떠났던 선교사들이 다시 내한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다시 내한한 선교사들은 남북분단으로 남한지역에서 새로운 선교과제를 찾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1948년 서울에서 교파를 초월해 모임은 사회사업과 농촌을 위한 지도력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 회의의 결과로서 4개의 선교부는 ‘기독교 봉사 훈련센터’라는 이름의 공동 프로젝트를 조직하기로 했다. 맨 처음 이 사업을 구상한 이는 감리교의 윌리엄 쇼(William E.Shaw, 서위렴)와 북장로교의 에드워드 애덤스였다. 이들과 함께 구세군의 허버트 로드(Herbert A. Lord, 어오도), 캐나다연합교회의 에드워드 프레이저(Edward James Oxley Fraser)가 공동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사업을 탄생시켰다.
그후 기독교연합봉사회 설립을 위한 발기인 모임은 1949년 3월 대구장로교 선교부에서 열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