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목표
① 고려 문벌 귀족 사회의 성립과 동요에 대해서 이해한다.
②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란?
고려는 이자겸의 난으로 권위를 상실하고 왕위를 다른 성씨(이씨)에게 뺴앗길뻔한 고초를 겪었다. 이는 고려 건국 후 200년 동안 유지된 고려왕조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자겸의 난 이후 혼란이 지속되자,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의견ㅇ니 많아지게 된다.
이에 인종은 왕권강화에 매진하고자 그 일환으로 서경천도계획을 세운다. 그 이유는 개경의 귀족세력(김부식 등)이 왕권을 수호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를 옮겨 귀족세력의 힘을 낮춰 왕실의 위상을 되찾고자 했다. 이에 풍수지리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인종의 마음을 흔들게 된다.
서경천도론을 내세운 사람은 서경의 승려 묘청이었다. 그는 제자 백수한과 함께 풍수설을 바탕으로 서경 세력들을 규합하고 있었다. 그 결과 정지상을 비롯하여 김안, 홍이서, 이중부 등 많은 인물들이 묘청의 풍수설에 매혹되었다.
이에 묘청은 개경이 이미 국운이 쇠진하여 왕의 기운이 있는 서경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뒷받침 하고자 정지상이 왕에게 “묘청은 성인이며 그의 제자 백수한도 뛰어난 인물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국가의 대사를 자문한 후에 정사를 처리한다면 반드시 국가의 태평성대을 보장 받을 수 있다.” 라고 상소를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소를 보자 인종은 묘청을 입궐토록 했다. 이후 묘청은 인종에게 “ 제가 보건대 서경 땅은 최고로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궁궐을 짓고 전하께서 옮겨 앉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또한 금나라가 공물을 바치고 스스로 항복할 것이다”라고 조언하게 된다. 이를 들은 인종은 서경에 궁궐 공사를 지시하고, 다음 해에 궁궐(대화궁)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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