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김수영 발제문
- 최초 등록일
- 2019.04.10
- 최종 저작일
-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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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김수영 시인 연보
2. 김수영 시의 변모 양상
1) 초기 시 (1945년 광복 이후 ~1950년 6·25 전쟁 직전)
2) 중기 시 (6·25 전쟁 이후 ~ 4·19 혁명 이전)
3) 후기 시 (4·19 혁명 이후)
3. 김수영의 시 정신
4.마치며
본문내용
1. 김수영 시인 연보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출생한다.
1928년 (8세) 어의동 공립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에 들어간다.
1934년 (14세) 보통학교 6년 동안 성적이 뛰어났으나, 가을 운동회를 마치고 난 뒤 장질부사(장티푸스)에 걸린다. 폐렴과 뇌막염까지 앓게 되었고, 서너 달 동안 등교하지 못하며 졸업식과 진학 시험도 치르지 못한다. 1년여 요양 생활을 한다.
1935년 (15세) 선린상업학교 전수부(야간)에 들어간다.
1938년 (18세) 선린상업학교 전수부를 졸업하고 본과(주간) 2학년으로 진학한다.
1942년 (22세) 영어와 주산, 상업미술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일본 유학차 도쿄로 건너간다. 선린상업학교 선배였던 이종구와 함께 도쿄 나카노에 하숙하며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조후쿠 고등예비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곧 조후쿠 고등예비학교를 그만두고 쓰키지 소극장의 창립 멤버였던 미즈시나 하루키 연극연구소에 들어가 연출 수업을 받는다.
1943년 (23세) 태평양 전쟁으로 서울 생활이 어려워지자 집안이 만주 길림성(지린성)으로 이주한다. 김수영도 조선학병 징집을 피해 겨울에 귀국하여 종로 6가 고모 집에서 머문다. 쓰키지 소극장 출신이며 미즈시나에게 사사받은 안영일을 찾아간다. 안영일은 당시 서울 연극계를 주도하고 있었고, 김수영은 한동안 그의 밑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듯하다.
1944년 (24세) 봄, 가족들이 있는 만주 길림성(지린성)으로 떠난다.
1945년 (25세) 8월 15일, 광복. 9월, 김수영 가족은 길림 역에서 무개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평안북도 개천까지, 개천에서 트럭을 타고 평양으로, 평양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종로 6가의 고모 집으로 간다. 서너 달 뒤 충무로 4가로 집을 구해 옮겨간다. 시 ‘묘정의 노래’를 <예술부락>에 발표하며 등단한다. 이 작품의 발표를 계기로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한다.
1946~1948년 (26~28세) 연희전문 영문과에 편입했으나 곧 그만두고, 이종구와 함께 성북영어학원에서 강사, 박일영과 함께 간판 그리기, ECA 통역 등을 잠깐씩 한다
참고 자료
김수영 전집 (민음사)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