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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포은 정몽주의 작품이라 당연하게 여겼던 <단심가>에 의문을 품고 그에 대해 왜 우리에게 아직까지 '단심가'로 알려진 것인지 분석한 과제 글입니다.
목차
0. <단심가> 전문
1. 서론
2. 홍순석,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 연구」,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2014.
2-1. <단심가> 작자의 변증
2-2. <단심가>의 전승
3. <백사가>에서 <단심가>까지
3-1. '백사가'라면 포은의 작품인가?
3-2. 언제부터 '단심가'였는가?
3-3. 왜 아직까지 '단심가'인가?
3-4. 우리에게 '단심가'
4. 결론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우리는 여말선초에 조선 태종이 된 이방원이 포은 정몽주를 초대한 자리에서 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하여가>를 불렀고, 포은이 <단심가>로 화답했다고 배웠다. 그러나 <단심가>가 온전히 포은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태까지 정몽주를 당연하게 작자로 여겼던 터라 이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단심가>를 선택해 관련된 논의를 찾아보고자 했다.
작자가 누군가에서 시작된 논의인 만큼 시조의 제목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공전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연구의 주제를 어디에 두느냐는 필자의 자유이며 비록 공전된다 할지라도 처음 가졌던 의문점에 초점을 두고 싶다. 다만, 시조의 내용적 의미에 대한 논의도 이어가겠다.
2. 홍순석,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 연구」,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2014.
2-1. <단심가> 작자의 변증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으로 포은이 <단심가>를 불렀다는 배경담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단심가>가 수록된 ≪청구영언≫, ≪해동가요≫에서 출처를 ≪고려사≫라고 밝혔으나, 현재 전해지는 ≪고려사≫에는 <단심가>와 관련된 글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포은집》에도 마찬가지로 관련된 배경담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담이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해동악부≫이다. 때문에 몇몇 학자들이 포은의 <단심가>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단심가>의 작자가 포은 정몽주라는 것에 이의가 없다. 임종찬의 경우 “시조 발생기의 작품들은 구전으로 전해오다가 훈민정음 창제를 기다려 문자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임종찬, ≪고시조의 본질≫(국학자료원, 1993), 37-38쪽.
고 하였다. 또한, 포은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대은 변안렬(1334-1390)이 지은 <불굴가>의 배경담에서도 <단심가>의 실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황패강이 <邊安烈과 不屈歌>..
<중 략>
참고 자료
홍순석,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 연구」,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2014.
신영명, 「여말선초 시조의 세 가지 국면」, 한국시조학회, 2008.
김인호, 「정몽주 숭배의 변화와 위인상」, 역사와 현실 제77호, 2010.
박태윤기자, 포은 정몽주 <단심가> 위작, 표절논란, GBSTV 경북방송,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