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의역사 및 한국사회시민권쟁점, 기본권
- 최초 등록일
- 2019.03.28
- 최종 저작일
-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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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민교육 수업 레포트입니다.
시민권의 역사에 대해 쭉 훑고서, 청년이 마주한 시민권(기본권)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주거기본권,노동기본권 등을 다룹니다.
목차
1. 시민과 시민권의 역사
2. 청년의 관점에서 본 시민권의 현재적 쟁점
1) 청년이 마주한 상황
2) 주거기본권
3) 노동기본권
3. 결론
본문내용
시민권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민에게서 시작된다. 당시의 중요 통치기구는 부올레로, 30세 이상의 시민 500명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리고 행정기구는 700명 중 600명이 추첨식으로 임명 되는 등의 방식을 통해 행정 권력이 특정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치했다. 선거가 아닌 추첨이 당시 의사결정의 핵심이었는데, 여기서 모든 시민은 동등한 자격을 지닌다는 가치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범주는 아테네인 부모로 태어난 성인 남성으로 제한하였고, 여성과 노예, 그리고 외국인은 시민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그리스의 시민이 정치적 존재였다면, 로마의 시민은 법적 존재였다. 초기 로마 공화정은 귀족정 체제였는데, 여기서 시민권은 로마와 그 인접지역의 남성자유인에게 부여된 정치적, 법적 지위를 의미했다. 그리고 정복전쟁 이후 전쟁에 참여한 평민의 권리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점차 시민권의 범위가 넓어져 결국은 모든 남성 자유인에게 시민권의 개념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주요 문명지역이 초기에 여러 국가로 분열되었고, 이후 정복전쟁으로 통일 제국화 되며 공화정이 사라졌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중세유럽은 봉건제 사회였다. 그를 중심으로 농경사회가 형성되었고, 이는 곧 군주와 영주가 농민으로부터 지대를 수취하는 계급사회를 의미했다. 그러나 십사군 전쟁으로 인해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봉건제 질서에 균열이 생겼고, 동시에 상업의 발전으로 도시가 발전하며 시민정치의 전통이 부활했다. 이 균열 당시 상인들은 군주, 영주, 교회 등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면서 자치권을 획득했다. 중세 도시의 시민은 길드 간 빈부격차로 정치적으로 평등하지는 않았지만 시민이라는 개념을 갖고있었다. 이 당시 넓은 의미에서의 시민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시민은 독자적인 도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참고 자료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035667&pDate=20150917
http://blog.naver.com/newstay/220376677855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 (2012), “청년주거실태조사 보고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65285&ref=A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책방안 보고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648193
http://blog.naver.com/dgj1645/220990160373
실무노동용어사전, 2014. (주)중앙경제
통계청
장미경 (2001).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의 의미 확장과 변화, 한국사회학, 35(6), 5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