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인도적지원단체 종사자들의 직무갈등에 대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8.12.04
- 최종 저작일
-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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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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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연구 배경 및 목적
2. 연구방법
3. 연구대상
Ⅱ 이론적 배경
1. 갈등의 정의
2. 갈등의 기능
3. 갈등의 원인
4. 갈등의 유형
Ⅲ. 조사결과분석
1. 북한 파트너들과의 직접적 상호작용에서 오는 직무갈등
2. 남한에서의 직무갈등
Ⅳ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북한은 1980년대 초반부터 농업 생산성 향상이 둔화되기 시작한데다 1995년부터 시작된 자연재해는 북한의 구조적인 식량부족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1995년 8월 북한이 유엔대표부에 긴급구호를 요청함에 따라 유엔인도지원국은 공동조사결과를 바탕으로 1995년 9월 유엔기구 공동명의로 인도적 대북지원을 위한 모금을 국제 사회에 호소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은 1997년부터 본격적인 대북지원을 시작하였다.
1998년 2월에 출범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2003년 2월에 출범한 노무현의 「국민의 정부」는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꾸준히 활성화하는 정책을 실현하여 남북한 상호 이해의 촉을 넓히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한다는 대북정책 목표를 견지하였다. 북한을 붕괴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함께 공존공영하자는 대북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하지만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난 정부 10년 동안의 남북관계 진전은 대단히 취약한 것으로 전제하고 남북상생 공영을 위한 비핵 개방 3000 정책을 간 대북사업의 실패를 전제로 비핵개방3000을 제시하였다. 북한은 이미 비핵개방3000 구상에 대해 거부와 저항을 했다. 지난 해 천안함폭침과 연평도 폭격으로 인한 남북한의 군사적 정치적 대립은 극에 달했다.
대북지원을 시작한 지 15, 16년을 맞는 민간단체들로는 우리민족서로돕기, 어린이어깨동무, 월드비전 등이 있다. 이 단체들은 김영삼 정부의 대북강경노선에서 어렵게 대북사업을 시작하였고 문민정부, 참여정부 하에서는 대북사업 최일선에서 대북사업을 진행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다시 강경대북정책의 회귀로 대북인도적 사업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지난 정부의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대북사업을 퍼주기 사업으로 북한을 지원했던 물자와 재원이 핵무기로 돌아왔다고 단정지었다. 대북지원이 북한을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참고 자료
김창걸, “교육행정학,” (서울 : 박영사, 1992).
오석홍, “조직론,” (서울 : 박영사, 1987).
서현석, “갈등의 원인과 갈등관리방안이 조직몰입에 미치는 영향,”(한국항공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김성필, “조직 내 효율적 갈등관리에 관한 실증적 연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