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전파론의 전조
Ⅲ. 전파론
1. 전파론의 등장배경
2. 전파론의 주요 학자
Ⅳ. 극단적 전파론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은 영국을 포함한 서양사회에 생산력의 증가와 부의 축적이라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시간이 흐르면서 빈부의 격차, 경제 위기, 노동 문제와 같은 다양한 문제를 동반했다.
동반한 문제들을보고 영국의 역사학자 트레빌리언(G.M Trevelyan, 1876~1962)은 산업혁명을 사회 혼란과 추함의 원인으로 여겼다.(브루스트리거, 2010에서 재인용). 즉 부의 축적을 가져다주어 자랑거리로 여겨지던 산업혁명은 발생지인 영국에서조차 골칫덩이로 전락해 버렸다.
이 산업혁명의 부정적 면모는 학자들로 하여금 이전 사회진화론의 진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그러한 계기의 작용으로 ‘전파론’이라는 새 담론이 탄생을 하였다.
본고에서는 전파론 등장에 앞서 나타났던 전파론의 전조와 전파론의 등장배경과 주요 학자, 그리고 극단적 전파론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Ⅱ. 전파론의 전조
1787년 영국의 동양학자인 존스(William Jones, 1746~1794)경은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라틴어의 유사성을 발견했다. 이 유사성의 발견으로 유럽의 역사언어학(philology)은 인도유럽어족(Indo-European languages)에 속하는 모든 언어 간의 역사적 관련성을 전제 했다.(앨런 바너드, 2003)
이 관련성은 단선진화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생기는 것 이었다. 단선진화론에 의하면 문화나 사회의 진화는 내용이 유사한 단일 방향의 발전으로 진행이 되고, 이 발전 속도는 사회에 따라 다르고, 인간 사회의 단계를 설정한다. 그런데 단계를 설정하면 진보한 사회와 미개한 사회가 있기 마련인데 언어사이의 유사성을 설명할 마땅한 증거를 단선진화론은 제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프로이센의 외교관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1767~1835)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 않는 바스크어를 집중적으로 탐구했고,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언어와 문화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제시했다.
참고 자료
머윈 S. 가바리노, 한경구 외 역, 『문화인류학의 역사』, 일조각
브루스 트리거, 성춘택 역, 2006, 『브르수 트리거 고고학사 사상과 이론』, 학연문화사
브루스 트리거, 성춘택 역, 2010, 『브루스 트리거의 고고학사』, 사회평론
앨런 바너드, 김우영 역, 2003,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에반스 프리차드, 최석영 역, 1998, 『사회인류학의 과거․현재와 미래』, 서경문화사
최몽룡 외 4인, 1997, 『인물로 본 고고학사』, 한울아카데미
크리스 고스든, 성춘택 역, 2001, 『인류학과 고고학』, 사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