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가>는 조선 고종(1866년) 때 홍순학이 지은 사행가사이다. 작자가 25세에 고종이 왕비를 맞이한 사실을 중국에 알리기 위해 중국에 사신의 행차를 보냈다. 이때 작가가 서장관(書狀官)으로 따라가서 청나라 연경(燕京:지금의 北京)을 왕복했던 1866년(고종3) 4월 9일에서 8월 28일까지의 기행(紀行) 견문을 읊은 작품이다. 총 3,924구의 장편 기행(사행)가사이며 4·4조의 가사체로 쓴 이 작품은 한중문화교류문서로서도 큰 의미가 있으며,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와 아울러 기행가사의 백미로 꼽힌다. 홍순학의 연행가 는 연행가사로는 맨 처음 학계에 소개되어 이 유형의 가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이 작품은 연행가 , 북원가 , 북원록 , 연행록 등의 제목으로 된 10여 중의 필사본들이 전하고 있는데 조선왕조 연경 사행자들이 쓴 사행가사를 통틀어 ‘연행가’라고 부르기도 하므로 혼란을 피하기 위해 병인연행가 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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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홍순학은 진하사은 겸 가례책봉 주청사의 서장관의 자격으로 연행길에 올랐다. 이는 백의한사로 종군했던 김지수나 자제군관이었던 유인목과 같이 자유로운 행동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분이 신분이니 만큼 연행 내에서 그의 역할과 책임은 막중한 것이었고, 이에 비례하여 연행 관료로서 그의 자부심도 대단히 컸다. 그래서 작가는 <연행가>의 첫 대목에서 연행에 참여하게 된 기쁨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조금 더 흥분된 어조로 자신이 맡은 직책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중책을 맡은 자로서 연행에서의 직무의 수행 과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까닭에 홍순학은 <연행가>에 자신이 맡은 관료로서의 임무와 그의 이행 과정을 차례대로 적고 있다. 이는 앞의 두 사람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관료만의 고유 임무이기 때문에 홍순학의 관료로서의 자부심을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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