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경제의 이해 이상락 교수님 중간고사자료 a+ 받았습니다. 한국 경제 발전 과정 : 해방 이후 우리 경제가 어떻게 변화 했는가 ? 교수님이 강조하신 교수님이 수업하신 내용, 교수님 생각, 학생 생각 모두 포함되어 좋은 점수 받았습니다. 참고하시고 좋은 성적 받으세요^^
- 최초 등록일
- 2018.10.04
- 최종 저작일
- 2018.05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자본주의인 한국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사유재산의 인정이었다. 이에 가장 먼저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북한은 사회주의였기에 1946년 정부수립 이전에 토지를 몰수해 분배하였는데 북한의 사례를 본 남한 농민들의 반란이 많았다. 당시 인구의 80%가 농민이었기에 불만을 달래는 것이 시급하였고 대다수의 농민이 소작농이었기 때문에 토지개혁입법을 제정해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으로 토지 개혁을 시행하였다. 한국전쟁 이전 남한 토지 개혁이 완료되지 않았다면 남한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사유재산 및 토지 문제로 인해 미군이 패배한 월남 전쟁과 비교하여 토지개혁과 사유재산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해방 전 산업 시설의 89%에 달하는 일본인 소유의 재산을 처리하는 귀속재산처리 문제를 해결하였다. 처음에는 자주관리 운동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나 공장 운영 자금 부족으로 실패하고 시설들은 헐값에 매각된다. 지주 등 일제시대 때 돈이 많던 사람들이 헐값에 산업 시설을 사들였고 이들이 현 재벌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마지막으로 1950년 5월 대한민국 경제의 출발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행법을 제정한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설립하였는데 돈을 찍어내는 발권 은행 역할 , 세금을 저장하는 국고역할, 통화금융기관으로서 은행의 은행 역할을 담당하였다. ‘1950년, 다시 몰락한 한국 경제’ 토지개혁, 귀속재산처리, 한국은행법제정으로 대한민국경제를 시작하려는 찰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으로 인한 물적·인적 피해가 엄청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고 구호자금·무상원조로 살아가는 원조경제시대를 겪는다. 이에 구호물품이었던 설탕, 밀가루, 면화를 가공하는 삼백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재 산업이 발달하였다. 소비재 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은 원료의 국외 의존도를 높이는 문제를 낳았다. 당시의 주요 수출품은 중석(텅스텐), 철강석, 건어물, 김 등 주로 지하자원과 농수산물 위주였는데 이를 다 팔아도 수출액이 1억 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지만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미국의 물품, 생활을 봤다. 가난만큼이나 국민들을 힘들게 한 것은 깡패와 정치의 결탁으로 인한 부패한 정치. 법보다 무력이 앞서는 사회질서의 엉망, 즉 깡패정치사회였다. 심지어 원조물자를 깡패들이 나눠주기도 하였다. .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