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 칸 사후 몽골제국은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1229년 개최된 쿠릴타이에서 칭기스 칸의 셋째 아들 우구데이가 카안에 즉위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말을 타고 정복할 수는 있지만, 말을 타고 다스릴 수는 없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우구데이는 경쟁자였던 동생 툴루이가 금나라 원정 후 귀환하던 길에 사망하자 명실상부한 몽골의 카안이 되었는데 이후 우구데이는 잇달아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한다. 먼저 우구데이는 1235년 몽골 고원 중앙부에 새로운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을 건설했다. 그리고 재무와 행정을 비롯한 제국의 통치를 뒷받침할 각종 기구를 정비했다. 그 중 핵심 기관이 재무청 기능을 겸비한 서기국이었다. 그리고 중앙에 대응하여 3대 속령인 화북, 투르키스탄, 이란에 총독부를 설치하여 세금 징수 업무 등을 원활하게 처리하도록 했다. 뿐 만 아니라 카라코룸을 기점으로 하여 제국 각지에 역참을 정비하여 중앙의 명령이 신속하게 지방으로 전달되고 지방의 정보 역시 신속하게 중앙으로 집중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정비 사업에는 막대한 재원 지출을 필요로 했다. 제국 전역에서 여전히 공물이 들어왔지만, 칭기스 칸 시절의 양을 따라가지는 못했고, 우구데이가 개혁을 했다 하더라도 몽골제국은 여전히 정복에 의존하는 형태였다. 결국 우구데이 자신을 포함한 몽골인에게 익숙해진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약탈에 의한 부의 유입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즉 몽골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목표, 이제까지 약탈하지 않은 목표를 정해야 했던 것이다.
우구데이는 수도 카라코룸 근처 초원에서 새로운 정복 대상을 정하기 위해 쿠릴타이를 소집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칭기스 칸이 혹심한 더위 때문에 침공하지 못했던 인도로 진군하자는 의견을 내었고, 페르시아로 더 밀고 들어가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까지 들어가자고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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