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두식과 머리장신구에 관한 연1구-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8.04.17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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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조선시대 여성의 수발형태
1. 얹은머리
1) 대수(大首)
2) 떠구지머리(거두미, 巨頭味)
3) 어여머리(於由味, 於汝美, 어염머리)
4) 트레머리
5) 둘레머리(코머리)
2. 쪽진머리
1) 쪽머리(娘子머리)
2) 조짐머리
3) 첩지머리
4) 새앙머리(絲陽)
5) 가리마
3. 땋은머리
1) 귀밑머리(댕기머리)
2) 종종머리
Ⅲ. 조선시대의 여성의 머리장신구
1. 비녀
2. 족두리, 화관
3. 첩지
4. 뒤꽂이
5. 떨잠
6. 댕기
7. 가리마
8. 거두미(떠구지머리)
본문내용
Ⅰ. 서 론
조선시대에는 복식에 대한 제약을 받아 장신구가 발달하지 못하였다.
특히 유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상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의 사용 습관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아울러 금, 은의 사용을 막았던 정책은 찬란하였던 우리의 금은 세공 기술을 퇴보시켰다.
그러나 머리형태나 머리 장식용 장신구 등은 다양하게 발달하여 조선시대 장신구의 특성을 이루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사치와 퇴폐풍조에 대한 반작용으로 근검절약을 강조하고 사치스러운 옷차림과 장신구, 화장에 대하여 여러 차례 금지령이 내린 바 있다.
이로 인하여 일반인의 평상시 치장이 고려시대에 비하여 훨씬 담백해졌다.
그것은 조선시대 지배층의 생활 사상 탓이지만, 기생과 궁녀 등 직업여성들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분대화장에 대한 기피 관념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또한 경제적인 이유도 없지 않다. 장기간에 걸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산업구조가 복구되지 못하여 전반적으로 경제적인 곤란을 겪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용관련 산업도 커다란 타격
을 받았다.
이상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삼국시대에 생성된, 한국인의 고유 미의식인 영육일치 사상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외형상 크게 변모한다. 신체가 정결해야 마음도 정결하다는 사상, 즉 내면의 미와 외면의 미가 동일하다는 사상으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의 치장은 본래의 생김새를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름답게 가꾸도록 하였으며, 심한 화장과 치장은 야용(冶容)이라고 하며 경멸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지(智)와 덕(德)과 체(體)의 합일을 추구한 결과 이상적인 여인상이 이전(以前)시대와 달라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잣집 맏며느리 감의 여인상이 최고의 모범 여인상으로 인식되었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의 수발형태인 얹은머리-대수, 어여머리, 트레머리 등에 장식품으로 사용되는 떠구지, 떨잠, 뒤꽂이 등과 쪽진 머리와 땋은 머리의 장식품으로 사용되는 첩지, 비녀등과 더불어 족두리, 댕기, 가리비 등에 따른 머리장신구를 고찰하여 형태와 사용 용도를 분석하고 고전머리의 재현과 그에 따른 장신구의 변화와 현대화에 대한 문제점을 고찰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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