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사, 겸재정선, 작품수록 및 해설
- 최초 등록일
- 201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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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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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들어가는 말
2. 생애
Ⅱ. 본론
1. 정선의 예술세계 형성
(1) 실경산수의 전통과 새로운 시대정신
2. 정선의 작품세계
(1) 진경산수화의 시작
(2) 진경산수화풍의 확립
(3) 원숙기
(4) 노대가의 만년
3. 정선의 기타 작품
Ⅲ. 결론
1. 정선 이전과 이후의 진경산수화
(1) 정선 이전의 실경산수화의 전통
(2) 정선 이후 진경산수화의 계승과 변천
2. 정선의 업적
3. 맺음말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서론
1. 들어가는 말
겸재 정선은 우리나라 회화사에 큰 획을 그은 거장이다. 36세부터 82세까지 그려진 작품들의 연대는 그가 일평생을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음을 잘 대변한다. 중국의 남종화법(南宗畵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사생(寫生)을 통해 이를 새롭게 발전시킨 진경산수화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성공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글에서는 정선의 진경산수화 작품들을 중심으로 정선의 진경산수화 화법과 그 변화 양상을 관찰하고, 그의 예술세계를 개관함으로써 18세기에 정선이 개척한 진경산수화와 발전과정,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2.생애 <1676(숙종2)~1759(영조35)>
정선은 조선의 문인화가로, 자(字)는 원백(元伯), 호(號)는 겸재(謙齋)․난곡(蘭谷)이다. 호조참판에 추증된 정시익(鄭時翊, 1633~1689)의 맏아들로, 한성 북부 순화방(順化坊, 현재 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에 어려운 생계를 돕기 위하여 이웃에 살던 김창집에게 청하여 그의 권고와 추천을 받아 종6품아문(衙門)인 도화서 화원이 되어 벼슬살이를 시작하였다.
그 뒤 세자를 보위하는 위수(衛率)를 비롯하여 한성부 주부(主簿) ․ 하양(河陽)현감 ․ 청하(淸河)현감 ․ 훈련도감 낭청(朗廳) ․ 양천(陽川)현령(縣令) 등을 지냈다. 만년에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까지 올랐다.
중국 남종화법에서 출발하여 치밀한 필법으로 색채산수를 주로 그렸고, 30세를 전후로 조선 산수화(山水畵)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사생의 수묵담채 진경산수로 전환하였다.
1711년, 36세 때 이병연등과 함께 금강산(金剛山)을 처음 유람하였는데,《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그려 회화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첫 금강산 유람의 경험이 그에게는 커다란 감동으로 지속되어 58세인 1734(영조10)년에는 금강산 그림의 하나의 모델이 되는 <금강전도>를 완성하였다.
참고 자료
이원복,『서거 250주년 기념 겸재 정선』, 국립중앙박물관, 2009.
겸재정선기념관,『겸재정선』, 피알앤북스, 2009.
이태호,『조선후기 회화의 사실정신』학고재, 1996.
원영섭,『세계 화가사전:동양편』이회문화사, 2009.
홍선표,『정선의 작가적 생애』,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2009.
박은순,『사의(寫意)와 진경(眞境)의 경계를 넘어서 謙齋 鄭敾 新考』,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