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기독교와 로마사회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8.01.11
- 최종 저작일
-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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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기독교의 형성
Ⅱ. 기독교의 확산과 복음의 변증
Ⅲ. 로마제국의 종교정책과 기독교
Ⅳ. 초기 기독교의 기독론 논쟁
본문내용
하지만, 기독교 복음 운동은 하층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계층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었고, 혼합된 집단의 공동체로 발전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자들의 가정집(~A.D150)에서 시작하여, 개인주택을 개조하여 집회소로 사용(150~250)데까지 발전하였고, 큰 건물이나 홀을 집회소로 사용(250~313)하였고, 313년 기독교 공인이후에 바실리카 형태의 교회당이 세워졌다. 이러한 발전은 교회의 의식화 및 시대의 필요에 따른 자연적 현상인 것이다. 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간호나 치유 행위를 목회의 주요과제로 삼았다. 여집사와 과부들이 간호사로서 역할을 수행하였고, 그 당시 비문을 통해 볼 때, 감독중에는 의사도 상당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는 에비온파, 영지주의, 마르시온파, 몬타니우스파 등의 많은 이단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이단들은 유대주의, 이교철학의 배경에서 등장했으며, 또한 이들은 문화적 상황, 현실성을 강조했다. 초기 교회는 이단들에 대처하여 정경확립에 박차를 가했고, 사도성을 중시하여, 신앙고백을 제정하는 일에 힘썼다. 이에 발맞추어, 사도교부들은 이단들의 공격과 로마의 핍박을 받는 기독교인을 위한 변증적인 글을 썼다. 물론, 초기 사도교부들의 가르침은 신학적, 교리적 통일성이 부족하여, 명확한 교리적 기초를 확립하지는 못했지만, 신학적인 개념화 과정에 공헌한 바가 매우 컸다. 이러한 사도교부들은 학파마다 특색이 있었다. 소아시아 학파는 신앙의 정통을 주장하며, 구원교리를 강조하며, 이단척결에 주력하였다. 알렉산드리아학파는 철학적이고 논리적으로 기독교를 입증하려고 하였다. 라틴학파는 알렉산드리아학파는 달리, 기독교를 철학과 조화시키려는 노력에 반대하며, 기독교의 역사성과 성경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특히 라틴학파의 키프리아누스는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기독교가 발흥되는 1세기는 노예제도가 최고조에 위치해 있을 때였다. 이 시기에 기독교는 노예제도개혁에 우선순위를 두기보다 노예사회 안에 보편적인 사랑과 실천을 강조하며, 간접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태도를 취했다.
참고 자료
이상규 『한국교회 역사와 신학』 (서울: 생명의 양식, 2007) 28 2)
이상규 『헬라 로마적 상황에서의 기독교』 (서울:한들출판사, 2006)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