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여 제출하시오.
- 최초 등록일
- 2017.06.05
- 최종 저작일
- 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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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공주 석장리 유적이란?
3. 석장리유적의 형태
가. 쌓임층
나. 문화층
4. 집 터
5.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공주시로부터 직선거리 약 6㎞, 장기면 석장리의 금강 북안 하안단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이다. 현재 사적 제33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이 유적에 대한 조사는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차에 걸쳐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하였다. 그 결과 지층은 27개의 층위로 형성되어 있고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층도 11개 층위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1990년과 1993년에 다시 구체적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보다 다양한 문화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이 유적의 분명한 성격이 확인되었다.
구석기인들은 집을 짓고 불을 피우며 살았는데, 여름철에는 화덕을 집밖에 겨울철에는 집 안에 마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집터 안에서 나온 머리털을 분석한 결과, 지금 인간의 머리카락과 같았음을 알게 되었고 땅바닥과 벽에 홈을 파서 새겨놓은 고래상과 돌을 떼어내 아가미, 눈, 비늘들을 새겨 만든 물고기상이 나왔다. 이들은 둥글납작한 자갈돌에 새기개 끝으로 선을 그어 그림을 그린 것을 통해 슬기슬기 사람들의 예술성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모래돌을 여러차례 문지르고 그어서 불을 피우는데 썼던 돌도 나왔다. 이 위층에 중석기 시대의 얇은 층이 덮여 있는데 세석인, 세석인핵, 잔새기개, 잔글개들이 출토되어 중석기시대의 문화가 발달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공주 석장리 유적이란?
석장리 유적은 1964년 봄, 미국인 대학원생인 앨버트 모어(Albert Mohr)와 그의 아내 엘 샘플(L,L Sample)이 이곳 석장리를 답사하던 중 무너진 층에서 뗀석기를 발견한 후, 그 해 5월 21일 연세대학교 손보기교수와 함께 답사하여 쌓임층이 무너진 곳에서 석기를 다시 찿고, 발굴 허가를 거쳐 1992년까지 12차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한다. 발굴 결과, 석장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우리의 역사가 단군시대(청동기시대)보다 앞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이 땅에 사람이 살아왔다는 귀중한 사실을 밝혀졌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공주석장리 유적
다음백과사전, 석장리유적
공주시 석장리박물관, http://www.sjnmuseu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