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각자의 정잼을 중심으로 다룬 글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내재적 발전론의 성립 과정
2. 내재적 발전론의 주요 내용
3. 내재적 발전론의 한계와 식민지 근대화론의 비판
4. 식민지 근대화론의 의의와 한계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근대국가의 성립 과정에서, 근대국가를 이루는 주체인 ‘국민’-‘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 서술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된다. 근대국가를 이루는 주체인 ‘국민’-‘민족’은 그러한 역사 서술의 과정에서 새로운 주체로서 주조되기 때문이다. 근대국가는 이러한 일국사-민족사를 서술해 나가면서, 자랑스러운 국민-민족을 주조해 고유한 정체성(正體性)을 획득한다. 이러한 일국사적 역사서술의 성립은 근대국가 형성의 중요한 성립조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국가에서는 이러한 민족사의 서술과 민족의 형성이라는 과제에 어려움을 겪는다. 자주적 역사 서술을 위한 물적, 학문적 토대가 쉽게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의 서술에서도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일제 강점기를 통해 한국사는 국민-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규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식민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찾는 방식으로 왜곡되어 서술되었다. 이러한 왜곡의 총체는 ‘식민사관(植民史觀)’으로 정의되며 정체성론(停滯性論)과 타율성론(他律性論)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식민사관은 해방이후 1960년대 이후까지 한국 사학계에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60년대 이후 이러한 식민사관을 청산하고, 일국사의 체계에 맞춰 자주적 역사학을 서술하려는 노력들이 대두되는데, 이는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경향을 중심으로 수행된다. 내재적 발전론은 한국사가 외적 요인이 아닌 내적 요인에 의해 지속적을 발전해왔으며, 특히 조선 후기에는 이미 자주적인 근대화를 이룩할 만한 역량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술되어 왔다. 내재적 발전론은 60년대 이후~80년대까지 한국사 연구의 기본적인 방향성으로 인식되었고, 자본주의 맹아론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사의 각 분야에서 근대 이행의 조건들에 대한 증명이 이루어졌다. 내재적 발전론을 중심으로 학계의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내재적 발전론이 비판하고 있는 식민사관의 타율성론에 대한 극복도 어느 정도 수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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