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시민
2. 박연
3. 맹사성
4. 홍대용
5. 김좌진 장군
6. 출생과 성장
7. 반기문 생애
본문내용
1. 김시민
장군의 출생과정
1554년 이조 명종 9년 음력 8월 27일(양력 9월 23일)에 충청도 목천현백전촌 지금의 충남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 백전부락에서 부 김충갑 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 김충갑의 자는 서초요 호는 구암 이며 고려충신 충렬공 김방경 장군의 12세손이다 김시민 장군의 관향은 안동 김씨 이며 자는 면오라 불렀다.
8살 때 길가에서 병정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천안군수행차가 있어 수행원이 길을 비키라 하자 “한고을 사또가 감히 진중을 통과 할 수 있느냐”고 호령하면서 조금도 기가 꺽이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원님이 말에서 내려 장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큰 재목이구나” 하면서 길을 비켜 지나갔다 한다.
과거급제 및 관직근무 동향
25세때인 1578년(선조 11년)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급제하자 훈련원주부를 제수 받아 봉직하였다. 부임해 보니 무기는 녹슬고 군기는 해이하여 유사시에는 쓸만한 병기와 군인이 없음을 개탄하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언젠가 큰일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방의 최고책임자인 병조판서를 찾아 뵙고 「소관이 훈련원에 몸담아 보니 군기가 녹슬고 군인의 기강이 해이합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국가에 변란이라도 생긴다면 속수무책이 될 터이니 대책을 강구하셔야 됩니다.」라고 건의하였으나, 병조판서는 「지금같이 태평성대에 군기를 보수하고 훈련을 강화하라니 올바른 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만약 훈련원 군사들을 조련하고 병장기를 만들면 백성들을 두려움속에 몰아 넣는 결과가 되리니 망언이로다.」질타하는 것이었다.
올바른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수모만 당하자 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군모를 벗어 병조판서가 보는 앞에서 발로 짓밟아 버리고 사직서를 써서 던져 버린후 훌훌히 일어서서 나왔다.
올바른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수모만 당하자 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군모를 벗어 병조판서가 보는 앞에서 발로 짓밟아 버리고 사직서를 써서 던져 버린후 훌훌히 일어서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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