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망정권과 호족, 그리고 유교사회
- 최초 등록일
- 2016.11.12
- 최종 저작일
- 20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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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 대 유교사회의 형성
2. 금고문논쟁
3. 왕망(王莽)과 신(新)의 성립
4. 호족과 후한제국의 변천
본문내용
한 대 유교사회의 형성
진의 시황제에 의하여 성립된 황제지배체제는 한나라 초기의 군국제 실시로 인한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을 겪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정치적 기반의 안정과 문제(文帝)이래 성장한 경제적 기반의 성장을 바탕으로 무제(武帝)의 황제지배체제의 마련의 기틀을 완성시킬 수가 있었다. 황제지배체제는 한 무제가 유교를 관학으로 채택함으로써 사상적인 무장을 하게 되었다. 고조 유방(劉邦)이 예악(禮樂)을 받아들여 엄정한 법의 통치를 유학으로 장식하는 것을 선호했고, 무제(武帝)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구축해 감에 따라 그것을 사상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국가의 권위와 위엄을 갖추어 줄 기반을 유학에서 구함에 따라 유학은 한제국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무제는 유학자 동중서(董仲舒)의 제언에 따라 유학을 관학화(官學化)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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