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공격을 개시하며 발발된 것이 우리소설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되는 6·25전쟁이다.
이 전쟁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해 졌으며, 이 사건을 소재로 많은 소설들이 등장하게 된다.
전후소설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수난이대〉와 〈흰 종이 수염〉과 같이 육체적인 상처를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반면 본고에서 살펴볼 작품인 〈왕릉과 주둔군〉에서는 정신적인 상처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종래의 연구에서 〈왕릉과 주둔군〉을 단순히 전후소설에서의 정신적 상처를 그린 작품으로만 평가했던 것에서 나아가 국수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고찰해보려 한다.
우선, 작품 분석을 하기 전에 〈왕릉과 주둔군〉의 작가인 하근찬에 대한 작가연구를 통하여 작가가 가진 문학세계관에 대해 알아보고, 기존의 연구사에 대한 검토를 통해 그 동안 〈왕릉과 주둔군〉이 어떻게 평가되어 왔는지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다음으로 작품 분석에 들어가서는 국수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춰서 〈왕릉과 주둔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인물 분석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통해 결론에서는 현대적인 관점으로 〈왕릉과 주둔군〉을 재평가해보려고 한다.
Ⅱ. 본론
1. 작가 연구
〈왕릉과 주둔군〉의 작가인 하근찬은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출생한다. 그의 작품에서 경상도의 어느 산골 마을이 공간적인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자신의 고향 이미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작품 속에 나타나는 언어 역시도 생생한 방언으로 구사되고 있다. 이는 〈왕릉과 주둔군〉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공간적인 배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보았을 때, 경상도 방언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후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중이던 1945년, 교원 시험에 합격하여 이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게 된다.
문학의 뜻이 있었던 그는 1955년부터 《신태양》 주최의 전국 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소설 〈혈육〉이 당선되고, 1956년 《교육주보》주최 교육소설 모집에 〈메뚜기〉가 당선되며 연이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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