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구노의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미사
- 최초 등록일
- 2015.11.08
- 최종 저작일
-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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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합창2 과제 레포트였는데 샤를 구노에 대하여 조사하고 성세실리아를 위한 장엄미사에 대하여 조사한 후 공연을 보고 느낀점을 적는 것이었습니다.
목차
1. 샤를구노에 대하여
2.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미사에 대하여
3. 공연을 보고 느낀점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샤를구노에 대하여
1818년, 구노는 파리에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석판화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구노가 5세 때에 세상을 떠났지만 어머니에게 일찍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 교육을 받았고 문학과 미술 또한 배웠다. 1836년 구노가 18세쯤에는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였고 프로망탈 알레비와 피에르 침머만 교수에게 대위법과 작곡법을 배웠다. 그 때 구노의 장래희망은 교회음악 작곡가였다고 한다. 1839년, 구노의 칸타타인 페르디난드(Ferdinand)로 우수한 신진 예술가들에게 주는 로마 대상(Prix de Rome)을 수상하여 로마로 3년간 유학을 가게 되었다.
로마에 간 구노는 팔레스트리나의 교회음악에 큰 영향을 받아 성직자가 될 생각을 굳혔고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과 지내며 독일 교회 음악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었다. 이때 접한 독일음악은 “마치 앞마당에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구노에게 엄청난 충격과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유학시절 중 구노는 중세 교회 음악에 흥미를 갖고 매일 바티칸의 시스티나 교회를 찾아가 미켈란젤로의 장엄한 벽화인 창세기를 보면서 팔레스트리나의 음악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독일, 오스트리아를 거쳐 1842년에 파리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
이때 교회음악에만 몰두하던 구노의 작품세계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슈만과 베를리오즈를 사귀고 세속음악으로 전향하여 가극을 시작하였다. 당시 파리에서는 오페라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고 구노의 친구였던 폴린 비야드로의 요청으로 1851년에 첫 오페라인 ‘사포’를 발표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탁월한 여성 서정시인 사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었지만 몇몇 평론가들에게만 칭찬을 받았을 뿐 관객에는 호응을 별로 얻지 못하였다. 1854년 구노는 ‘성녀 세실리아 미사’로 알려진 장엄미사를 작곡했고, 이 작품은 이듬해 성녀 세실리아 축일에 파리 생퇴스타슈 성당에서 초연되어 구노의 위상을 높였다.
참고 자료
박명기, <합창문헌(미사)에 관한 분석 연구>, 석사학위 논문, 서울: 연세대학교 대학원, 1984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 9. 10., 한국사전연구사
Slonimsky, Nicholas, ed. Baker's Biographical Dictionary of Musicians, 7th ed.
http://www.charles-gounod.com
김재복, Charles Gounod의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미사>에 관한 분석 연구, 석사학위 논문, 중앙대학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