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사 왜곡은 백제가 망한 후(660) 그들이 한반도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일본은 종래에 사용하던 왜라는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고치고(670), 왜왕을 천황이라 부르면서 일본 역사를 자생(自生) 왕조사로 변색시켰다. 그리고 한반도의 역사를 그들의 식민지사로 변조하였다. 8C, 일본의 첫 역사서를 편찬하면서 가공한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임나일본부)’은 19C말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할 때 다시 이용되었다. 1910년, 한국을 강제 병합한 일제는 자국의 학자를 조선으로 데려와 ‘조선사편수회’를 조직(1925)하였다. 조선사편수회는 16년 동안 무려 100만엔에 이르는 거액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사』를 편찬(1938)했다.『조선사』를 편찬할 때 식민통치에 유리한 많이 넣고 불리한 사료는 의도적으로 넣지 않았다. 일제가 채택한 사료의 85%는 마지막 왕조인 조선과 고려에 관한 것이고, 상고사와 관련되는 자료는 겨우 8%에 불과하였다. 일제가 이 책을 편찬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단군 관련 기록을 삭제하고, 한국과 일본은 같은 조상을 뿌리로 한다는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을 구축하며, 조선인은 열등하고 일본인은 우수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조선사』간행은 민족 정체성의 뿌리를 뽑아 한민족을 일본왕의 충실한 신민으로 전략시키려는 역사왜곡 정책 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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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할 때 우리는 단순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국력의 문제로 보고 약소국의 한을 말하기도 하고, 마음대로 하라는 식의 관조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모두 옳은 태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만나 대화할 때 그런방법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 입장을 보면 사실의 왜곡이지만, 그들의 입장에 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와 부딪쳤을 때 우리는 역사에 대해 좀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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