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개혁의 토지제도사적 의의/배경/농지개혁의 논점/시행과정/농지개혁법 분석/농지개혁의 허와 실
- 최초 등록일
- 2015.04.26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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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농지개혁의 배경
2) 농지개혁에 대한 요구
3) 해방 후 농지개혁의 논점
4) 농지개혁의 시행과정
5) 농지개혁법의 분석
6) 농지개혁의 허와 실
(1) 농민적 토지소유의 확립
(2) 농지개혁의 농민 부재성
(3) 농지개혁 성과론의 검토
본문내용
우리나라 농민은 역사적으로 가혹한 부역노동에 시달리고, 공물을 강제적으로 납부하며 조세를 수탈 당하는 등 처참한 환경 속에서 생존해 와야 했다. 이와 달리, 지배계급은 구중궁궐의 생활, 즉 향락의 생활을 즐겨 왔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향락권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하여 한층 더 가혹한 수탈을 감행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는 자본주의화와 제국주의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일제에 의하여 식민지로서 강제 인수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착취의 기초 공작 과정으로서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조세제도를 근대화하고자 하였다.
<중 략>
미군정은 1946년 2월 21일 미군정법령 제 52호로 신한공사를 세우고 과거 동양척식회사가 소유한 일체의 재산을 인수하게 했다. 그러나 일본인 및 민족 반역자의 토지몰수 등과 같이 토지제도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바라는 농민들의 열망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북한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에 의한 토지개혁이 실시되자, 미군정도 토지개혁정책을 서두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47년 12월 농지개혁법안이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에 상정된다. 이 토지개혁법안은 27개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포일로부터 실시하기로 되어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 개혁의 목적은 봉건적 토지제도를 타파하고 농민의 사회적 자유를 이뤄 자경, 자작의 원칙에 의한 자립을 추구하고, 농민생활을 향상시키며 농촌문화를 발전시켜 농업생산력을 증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중 략>
농지개혁의 가장 큰 의의는 그것이 봉건적 지주적 토지소유제를 농민적 토지소유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농지개혁 후 나타난 농업위기는 농지개혁의 전개과정에서 국가 독점적 자본의 기능에 의해 일어난 문제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즉, 농업위기의 국면만을 중시해 농지개혁이 농민적 토지소유를 확립하게 되었다는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농민적 토지소유가 농민의 빈곤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 또한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 농지개혁은 농민부재의 상태에서 실시되었기에 농민의 빈곤이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가중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