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베이컨의 신기관
- 최초 등록일
- 2015.02.28
- 최종 저작일
- 20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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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프란시스 베이컨의 생애
2. 신기관의 구성과 내용
3. 경험론의 한계와 의의
본문내용
1. 프란시스 베이컨의 생애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영국의 철학자, 정치가로 르네상스 이후의 특히 영국 고전경험론의 창시자로 불린다. 런던의 명문집안 출신인 그는 궁정 법률가였던 니콜라스 베이컨의 둘째 아들이며, 또 세실가의 벌리 경(卿) 조카이기도 했다. 12세에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당시 사람들이 철학계의 수장으로 받들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삶에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하는 이 그리스 철학의 두목에게 나는 지독한 환멸을 느낄 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이론적 학문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을 가했다. 사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했던 이유는 실천적 지식보다는 이론적 지식이 중요하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는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험적 지식들을 중요시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그는 18세에 아버지를 잃고 변호사 공부를 시작해서 21세에 변호사자격증을 얻었다. 변호사 면허를 얻은 후 당돌한 변호사로 이름을 떨치던 그는 세실가의 인색한 도움으로 관직의 자리를 얻게 되었다.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천천히 성장하여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임스 1세의 치하에서는 급속히 승진하여 52세에 검찰총장, 58세 되던 해인 1618년에는 왕의 다음 관직인 대법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1603년 처음으로 기사작위(knighthood)를 받은 이후로 1618년에는 벨럼의 남작, 그리고 1621년에는 세인트 오르반즈 자작의 작위를 받는 등 출세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1621년 법원 기소자(起訴者)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자 죄를 자백하여 많은 액수의 벌금형과 오랜 세월의 징역형을 언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벌금은 면제되고 감옥살이도 며칠밖에는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대가로 관직으로부터는 영원히 추방되었다. 베이컨은 그가 받은 재판과 그 선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최근 50년 동안 영국에 있어서 가장 공정한 재판관이었다. 그러나 나에 관한 재판은 최근 200년 동안 영국에 있어서 가장 공정한 재판이었다.”
참고 자료
베이컨 지음, 진석용 옮김,『신기관』, 한길사, 2001.
서울대학교 편,『권장도서 해제집』, 서울대출판부, 2005.
스털링, P. 램프레히트 지음, 김태길 외 옮김,『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1996.
김형석 지음,『서양철학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7.
안효빈 외6 공저,『미리 보는 서양 문학, 사상 베스트30』, 풀잎,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