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쟁패
- 최초 등록일
- 2014.11.30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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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초한쟁패의 배경 - 진(秦)의 멸망과 분열
2. 초한쟁패의 주요 인물 - 유방과 항우
(1) 한 고조 유방
(2) 서초패왕 항우
3. 초한 쟁패전의 전개 과정
본문내용
1. 진의 멸망과 분열
진나라는 B.C 221년 기나긴 춘추전국시대를 강한 군사력으로 통일하고 시황제에 의해 강력한 법치가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시황제가 죽은(B.C 210) 뒤에 즉위한 2세 황제인 호해부터 강력했던 왕권이 흔들리고 신하들에 의해 정국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시황제가 죽은 직후,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는 황제의 유서를 조작하여 황태자를 자결하게 하였다. 시황제의 18남인 호해를 즉위시켰고 호해가 즉위하자, 다른 시황제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와 조고의 음모로 살해당했다. 호해는 황제가 되어 정치에는 무관심하여 사치와 향락에 빠졌고, 이사와 조고의 전횡으로 정국은 크게 어지러워졌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서로 권력을 두고 충돌하였고 결국 조고의 모함으로 이사는 참형에 처해졌다. 또한, 이사와 함께 진의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장군들이었던 몽씨(몽염, 몽의, 몽념) 형제도 모두 숙청당했다. 조고는 점점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며 황위 마저 탐내었다. 호해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사치만 일삼는다며 자결하도록 압박하여 호해를 자결시키고 시황제의 장남인 황태자 부소의 장남 자영이 3세 황제에 즉위하였다.(B.C 207)
자영은 조고의 만행을 보고 여러 장수들과 모의하여 즉위 직전, 조고와 그의 가문을 모두 숙청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즉위했을 때는 진나라가 이미, 정복했던 전국 6국(진을 제외한 초, 한, 제, 양, 조, 연)은 부활해있었다. 그는 스스로 황제에서 왕으로 낮추었는데 진승․오광의 난에 이어 전국에서 수많은 세력들 중 유방과 항우가 관중으로 진격해 왔으며 결국 먼저 함양 앞으로 왔던 유방에게 항복하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니 진은 천하를 통일한지 불과 15년 만에 멸망했다.(B.C 206)
시황제의 엄격한 법치, 만리장성과 아방궁 등의 대요역 징발로 백성들에게는 일찍이 불만이 쌓여있었고, 진승․오광의 농민 반란을 시작으로 진나라는 스스로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참고 자료
김태운, 2012, 〈초한쟁패(楚漢爭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