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 한국교회의 부흥 - 1903년, 1904년, 1906년, 1907년 대부흥, 한국에서의 부흥의 기원
- 최초 등록일
- 2014.10.16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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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903년
2. 1904년
3. 1906년
4. 1907년 대부흥
5. 한국에서의 부흥의 기원
본문내용
1903년 원산에서의 부흥이 1907년의 평양대부흥의 시원이 된다. 중국에서 사역하던 중 1900년 의화단(義和團)사건으로 휴양 차 원산에 오게 된 남감리회의 화이트( Mary Cutler White)와 캐나다장로교의 매컬리(Louise H. McCully)는 한국인 가운데 부흥이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오던 중 8월 24일부터 1주일간 기도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 모임에는 화이트와 매컬리, 그리고 케롤(A. Carrol), 노을즈(Knowles), 하운셀(J. Hounshell) 등이 참석하였고, 캐나다 출신의 감리교 선교사 하디(Dr R. A. Hardie)는 효과적인 기도에 대해 3차례 강의를 하게 되었다.
<중 략>
1903년에 이어 1906년에는 또 한 차례의 부흥을 경험하게 된다. 1906년 개성 송도(松都)에서는 큰 부흥을 경험했는데, 선교사 크램(W. G. Cram)은 이때에 회개와 죄의 고백이 일어났다고 기록했다. 평양주제 선교사들은 1906년 8월 26일부터 9월 2일까지 하디를 초청하여 ‘평양선교사 사경회’를 개최하였다. 이 집회에서 하디는 요한 1서를 본문으로 설교하였고, 하디는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였으며, 서구인으로서 우월의식을 가지고 한국인을 폄하하였던 죄를 회개했을 때 성령께서 자신을 변화시켰음을 진솔하게 증거 하였다. 이 집회에서도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셨고 평양장대현교회의 이길함(Graham Lee)을 비롯하여 참석자들은 큰 은혜를 받았다.
<중 략>
그렇다면 1903에서 1907년에 이르는 부흥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 부흥의 시원에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일가? 어떤 조건이 부흥 역사에 영향을 주었을까? 일반적으로 1903-7년에 이르는 한국교회 부흥은 다음의 4가지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말해 왔다.
첫째, 부흥은 사경회(査經會)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국에서의 경우를 포함한 부흥의 역사에서 가장 현저한 특징이었다. 말씀이 읽혀지고 가르쳐지고 해석될 때에 심령의 변화를 가져오고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는 부흥의 출발점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