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10.05
- 최종 저작일
-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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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화기 건축의 변화
1) 양식건축의 도래
2. 일제강점기의 주거변화
1) 한옥의 변화 : 도시형 한옥과 개량한옥
2) 주택의 대량생산 : 영단주택
3) 외래양식의 도입 : 문화주택
4) 일제 강점기의 빈민 : 토막민의 출현
3. 산업화시대의 거주문화
1) 불량주거의 발생 : 달동네, 벌집
2) 아파트의 도입과 영향
3) 새마을운동과 농촌의 변화
4) 부실공사 : 개발 후유증의 노출
4. 현대의 주거문화
1) 아파트의 변화 :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본문내용
개화기 건축의 변화
양식건축의 도래
개항이나 갑오경장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는 사실을 현상적으로 고립시켜 보는 태도에서만 가능하다. 이들 사건은 그 근대적 개혁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일본 침략정책이 일환으로 강행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면 자생적인 근대화 노력을 저해했다는 측면에서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한국건축사에 있어서 개항기 건축이 갖는 의의는 조선에 처음으로 양식건축이 소개되었다는 데에 있다. 개항과 더불어 유입된 이들 건축물들은 구미 열강이나 일본의 세력이 이 땅에 진출함으로 인하여 야기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유입된 건축은 당시 한국 건축일반에 영향을 끼쳤다가 보다는 서구 문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 첨병역할을 하였다는 데에 있다. 즉 건축적 영향보다는 오히려 일반 대중에게 끼친 사회, 문화적 영향력에 더 큰 비중을 갖고 있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들 양식 건축물들은 기존의 전통적 질서를 붕괴시키고 이질적인 서구의 질서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중간 결과물로서 건축적 측면보다는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일반인들에게 끼친 문화적 충격이라는 측면에서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고 하겠다.
부산(1876), 원산(1880), 인천(1883)이 개항되면서 각 개항장에는 외국인을 위한 거류지와 공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부산일본영사관은 1884년에 지어진 목조의양풍의 일본영사관 보다 먼저 지어진 것이다. 1897년 목포가 개항되고 조계가 설치되면서 일본은 르네상스양식을 모티브로 목포일본영사관을 개설하였다. 일제강점 후 이 건물은 목포부청, 해방후 1997년까지 목포시청, 그후 지금까지 목포시립도서관, 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산세관청사는 붉은 벽돌과 화강석이 잘 조화되어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하고 있다. 탑 부분이 철근콘크리트가 매트기초로 되어있어 구조역사상 가장 오래된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기록되고 있다. 인천세관청사를 비롯한 탁지부건축소에서 지은 건물들은 대체로 르네상스나 절충주의양식으로 그 중 현존하면서도 비교적 세련된 것으로 광통관, 대한의원본관, 부산세관 등을 들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