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10.04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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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화기 (1890~1910년)
2) 일제강점기 (1910~1945년)
3) 광복후 (1945~1960년)
4) 박정희 정권 시대 (1961~1980년)
5) 80년대 (1981~1990년)
6) 80년대 이후 (1990~ )
본문내용
개화기 (1876-1910)
1. 서양문물 도입사상의 영향. 정부정책의 변화- 양복
정부의 1894년 갑오개혁은 관복을 간소화시켰고 1895년 단발령의 선포는 조상들의 머리스타일에 일대 변화를 주었으며 1899년 사신복장의 양복화 1900년 문무복의 구미식 관복화가 되었다.
1884:갑신정변- 관복의 간소화 문관,무관의복의 차별을 없애고 흑색으로 통일함
1894:갑오경장- 의제개혁, 군복의 신식화
1895:을미사변- 단발령, 양복을 입게 함
2. 천주교와 기독교의 전래. 신교육의 보급 - 여성의복의 간편화
천주교와 기독교의 전래는 자유와 평등을 기본 이념하여 여성들의 의식개혁을 초래했고 교육 등 사회진출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여성으로 하여금 종래의 한복에서 활동하기 쉬운 의복으로 바뀌게 했다.
교사에 의해 세워진 기독교학교는 전통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자유, 민주주의적인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특히, 여성들의 교육받을 기회를 보장함과 아울러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촉진시켜 여성복장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3. 동학의 영향. -계급에 따른 복식제도 사라짐
동학의 '인내천'사상 ‘곧 사람이 하늘이다.’ 라는 생각은 인간존중의 사상으로 복장에 있어서도 신분계급을 타파하여 계급에 따른 복잡한 여러 복식제도를 없애는 계기가 되었다.
1899년 김유정의 딸이고 윤치호 부인이었던 윤고라는 최초로 양장을 한 여성으로 S자형의 옷, 비단양말, 굽낮은 펌프슈즈, 리본과 새깃털로 장식된 모자와 양산을 들었다. 서양처럼 남편의 성을 따서 김이 윤으로 고라는 코리아를 의미했다.
< 개화기에 우리의 복식은 중국과 서양, 그리고 고유의 복식이 융합된 형태의 복식 발전을 보인다. 남자복식은 의복의 개혁에 따라 관복의 간소화와 양복의 도입 등이 나타나고, 여자 복식은 한복의 개량과 양장의 착용을 들 수 있다. 복식의 기본 형태는 유지하면서도 저고리 길이에 변화가 많았으며, 고름 대신 브로치를 달거나 통치마를 입기도 하였다. >
참고 자료
http://blog.naver.com/otmb3?Redirect=Log&logNo=13694643
http://blog.naver.com/teamay?Redirect=Log&logNo=60014909889
http://www.cnu.ac.kr/~phistory/
http://www.koreafashion.org/
http://www.shoedb.com/pds/pass/d283.htm
<우리 옷 이천년> 전완길 외 - 한국생활문화 100년
저자: 문화관광부·한국복식문화 2000년 조직위원회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