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선왕. 그는 왜 변하였을까
- 최초 등록일
- 2014.09.25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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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충선왕의 생애
3. 그는 왜 바뀌었을까?
4.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머리말
학기 초에 들리던 말이 있었다. 그것은 일부 학생이 모여서 한국사를 공부한다는 소리였다. 물론 나도 거기에 포함되었는데 내가 맡았던 부분은 중세사를 맡았다.
그런데 나는 그 중에서 우연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으로 왕의 업적을 찾던 중에 충선왕을 발견했는데. 이 사람에 대해 간략히 읽어보니 공민왕과 비슷한 업적을 보였던 것이다. 허나 원에 잠시 갔다 오고 나서는 그의 활동은 점차 미비해졌다. "왜 그러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이번 기회에 이를 써보고자 한다. 나는 그가 왜 변했는지에 중점을 두고 탐구하고자 한다.
2. 충선왕의 생애
충선왕은 이름은 장(璋)이고 자는 중앙(仲昻)이며, 옛이름은 원이고 몽골이름은 이지리부카이다. 충렬왕의 큰아들이며, 어머니는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 제국대장공주이다. 충렬왕 원년인 을해년(1275년) 9월에 출생하였다.
그는 성품이 총명하고 굳세며 결단력이 있었다. 따라서 충렬왕이 충청도로 사냥을 가려는데 충선왕이 울며 말리기도 하였다. 평소 충렬왕은 사냥과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장목왕후는 그 같은 왕의 처사를 불만스러워 하였는데 이러한 울면서 말리는 것은 장목왕후의 심정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충선왕은 부왕인 충렬왕과 모후 장목왕후의 갈등을 지켜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땔나무를 지고 궁으로 들어온 자를 보고 마음 아파했으며 해진 베옷을 입은 사람이 땔 나무를 지고 들어오는데 사람을 시켜 사연을 물으니 자기는 장작서의 기인이라고 하였다.
<중 략>
4. 맺음말
위에서 적은 바와 같이 내가 보기에는 충선왕은 내가 보든 다른 사람들이 보든 간에 약간의 시대 아니 몇 십년의 차이로 아쉽게 그의 개혁이 실패했던 왕으로 보인다. 뭐 물론 다르게 보는 샤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원⦁명교체기였다면 그의 개혁은 성공적이었고 그 뒤를 이어받는 왕들은 더욱 개혁을 추진할 수 있어 공민왕이 암살되는 그런 일까지 없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동방미디어주식회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영규, 1996년 11월 15일,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 실록(증보판), 들녘
1991년 8월 30일, 고려사(高麗史), 여강출판사
김종서 외, 2004년 7월 30일, 신편 고려사절요(중), 신서원
이이화, 2000년 7월 25일, 한국사 이야기7 몽골의 침략과 30년 항쟁,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