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장의 전환기
1)단군신화부터 조선시대 까지
2)개화기부터 일제시대 이후 까지
3)현대화장
본문내용
신체의 아름다운 부분은 돋보이도록 하고, 약점이나 추한 부분은 수정하거나 위장하는 수단이다. 화장이란 말은 개화 이후부터 널리 사용된 외래어로서 가화(假化) ·가식(假飾) ·꾸밈 등의 뜻을 지닌다. 화장에 해당하는 순수한 한국어는 장식(粧飾/裝飾) ·단장(端粧/丹粧) ·야용(冶容)이고, 화장품은 장식품(粧飾品) ·장렴(粧) ·장구(粧具)였다.
이처럼 다양한 표현이 있는 것은 가리키는 의미가 약간씩 다르기 때문이다. 얼굴화장만을 가리킬 때는 야용, 몸단장에까지 이르면 단장, 일반적인 화장일 때는 장식(粧飾)이었고, 장신구까지 치장한 경우에는 장식(裝飾)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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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람들이 공사로 모일 적에 모두 비단과 금은으로 장식하고, 특히 대가나 주부등이 벼슬아치는 두건을 쓰며, 소가(小加)는 절풍(折風)을 썼다. 또 모두 깨끗한 옷 입기를 좋아하며 밤이면 남녀가 여럿이 모여서 배우놀이와 음악을 즐겼다는 ‘후한서(後漢書)’의 기록을 근거로 추리하면, 고구려 사람들이 신분과 직업에 따라 각기 달리 치장했음이 분명하며, 평상시 치레와 나들이 및 의례 치레를 구별하였다. 예를 들면 단편 적인 기록이긴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무녀(舞女)와 악공(樂工)이 연지 화장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이마에 연지를 동그랗게 그렸다고 한다. 서기 5-6세기경에 축조되었으리라고 추정되는 수산리 고분벽화의 귀부인상을 보면,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며 뺨과 입술이 연지로 단장되어 있다. 쌍영총 고분벽화의 여인상도 연지화장을 하고 있는데, 수산리 고분벽화의 주인공은 귀부인이고, 쌍영총 벽화의 주인공은 여관(女官) 혹은 시녀로 보임에도 연지화장을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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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과정을 거쳐 근대화를 먼저 이룩한 유럽에서는 현대적인 개념의 화장품이 생산되고, 상품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건국 이래 중국 및 일본에 치중한 외교정책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물론 근대화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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