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농민 운동 시대와 그를 바라보는 올바른 인식
- 최초 등록일
- 2014.07.07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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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학 농민 운동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와 내용이 상세합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동학농민운동의 배경과 성격
1. 개관
2. 19세기의 부세 운영
1) 환곡
2) 조세금납의 문제
3) 도결제(都結制)의 문제
4)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한 민중수탈 강화
3. 개항 후의 제(諸)문제
1) 화폐 유통 구조
2) 대일 곡물 유출에 따른 농민층의 저항
3) 변혁주체의 문제
4. 동학농민운동의 성격
Ⅲ.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1. 제1차 기병
2. 집강소 시기
3. 전주화약이후의 국내외의 정세변화
4. 제2차 기병
Ⅳ.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의의
Ⅴ.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동학농민혁명에서 농민들의 요구사항은 폐정개혁 12개 조항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봉건모순과 민족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봉건모순은 정치기강의 문란, 사회신분문제, 조세제도의 문란, 토지제도의 문란 등이었고, 민족모순은 외국 상인의 침투와 이들의 국내 유통기구 장악으로 인한 경제파탄 등이었다.
그런데 봉건모순의 핵심은 '지주-전호관계'와 '국가-농민의 수취관계'이며, 항조(抗租)투쟁의 격화와 조세 부과의 양상 그리고 공동납의 형태는 고립 분산적 항쟁을 집단적 항세(抗稅)투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소빈농층은 지주-전호제를 철폐하고 농민적 토지소유를 실현하려 하였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소빈농층은 소상품생산자로서의 성장을 지향했던 것이다.
민족모순은 개항과 함께 더욱 심화되었다. 봉건적 위기와 근대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재정부담의 가중이 국가의 재정적 위기를 초래했고, 이것이 농민의 부담으로 이전되어 농민층의 몰락은 가속화되었다.
<중 략>
봉건정부가 더 이상 외세의 침략에 대항할 수 없음을 확실히 인식한 민중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반침략전쟁을 전개해 나간 귀중한 경험이었다.
전쟁 자체로는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정부로 하여금 농민층의 요구를 반영한 갑오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한 데에서도 동학농민혁명이 당시 사회에 끼친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농민혁명을 통해 성장한 농민군의 구성원들은 그 뒤에 일어난 반일 의병전쟁 등에도 계속 참가함으로써 반봉건 반침략운동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실로 자주적인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민족운동의 최고봉이었으며 한국근대사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즉, 국내적으로는 봉건적 사회질서에 마지막 결정타를 입혔으며 세계사적으로는 제국주의화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열강의 침략에 대한 아시아민중의 반침략의지를 보여준 반제전쟁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며 식민지하 민족해방투쟁의 전개에 귀중한 역사적 경험이 되었다.
참고 자료
강만길 외, 『한국사 10 - 중세사회의 해체2』, 한길사, 1994 이현희, 『한국민족운동사의 재인식』, 자작아카데미, 1994
이영호, 『동학과 농민전쟁』, 혜안, 2004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 연구2 - 18 ? 19세기 농민항쟁』, 역사비평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