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의 역사] 개항 이후 복식 - 개항초기, 일제 강점기, 해방이후, 군사 정권, 1980년대 이후-현재
- 최초 등록일
- 2014.06.22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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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항초기(1890-1910)
2. 일제 강점기(1910-1945)
3. 해방이후(1945-1960)
4. 군사 정권(1961-1980)
5. 1980년대 이후~현제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개항초기(1890-1910)
1) 서양옷의 수용
고종 13년(1876년)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개항하면서 서양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서구 문명과의 접촉은 근대적 자각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과 구미 시찰, 외교 체결 등의 사건으로 변화의 촉매제가 되고, 이때 시찰에 참여하였던 개화파의 의해 여러 가지 개혁이 단행되었다. 1884년 갑신 의제 갑신 의제개혁의 관복 간소화(흑단령을 입되 소매를 좁게), 1894년 갑오 의제 개혁의 관복 개정(흑색 주의에 답호), 1985년 단발령과 서구식 군복 채택, 1894년 외교관 복장의 양복화, 1900년 문관 복장의 양복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양복화는 궁중과 정부 요인 상류층에서 시작하였으며, 여성들은 서서히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나라 의생활에서 서양 복식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별기군이었다. 조정에서는 중국에 영선사로 김윤식 이하 60여 명의 유학생을 선발하여 근대 무기 제조법과 군사 훈련법 습득차 파견하였다.중국에서 돌아온 이들은 1881년에 별기군을 창설하여 근대식 훈련과 무기를 갖추고 전투 실기를 익혔는데, 이때 복식도 서양복으로 바꾸었다.
2) 여성복 개량
이 시대 신식 여학교가 생긴 후에도 여학생들이 입었던 옷은 주로 저고리에 치마였다. 치마는 옆트임이 있는 자락치마였으며, 1900년대 전후 한복은 저고리 길이가 짧고 품과 소매통이 좁았던 단소한 형이었다.
최초의 여학생 교복 제정은 이화학당에서 실시되었다. 1886년 5월 31일 학교를 세운 뒤 스크랜트 당장은 그 해 8월 한국 풍속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경제적이고 실정에 맞는 빛깔의 교복을 정하였다. 이 교복은 다홍색의 긴치마 저고리였으며, 옷감은 러시아 면제품이었다. 그래서 ‘홍둥이’라고 불렸다.당시에는 저고리와 치마를 같은색으로 하였고, 후에 나이든 학생에게 옥색치마, 흰저고리, 고쟁이, 내복, 버선을 제공하고, 머리는 땋아 늘이고 자주나 다홍 댕기를 들이고, 신은 짚신, 미투리, 나막신, 징신을 신었다.
참고 자료
조효순 저,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전호태 저,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김은정, 임린 저, 역사 속의 우리옷 변천사, 전남대학교출판부 2009
김정호 저, 우리 옷 역사 2000년, 글누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