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대학원 과제입니다.1912년 1월 1일에, 남경에서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의 취임식이 있었다. 중국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속되어 왔던 황제지배체제(왕정)를 거부한 공화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전년 10월 10일 호북성(湖北省) 무창에서 일어난 신식 군대의 반란이 남방의 여러 성으로 파급된 결과였다. 이는 중국의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일본에게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중국땅으로 망명을 나섰던 한국인들이 이러한 상황을 그저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길 수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가 있는 안창호에게 중국의 국내 사정을 정기적으로 보고해 오던 조성환은 중국에서의 새로운 공화국 탄생을 눈으로 보면서 감격하여 중국에서의 공화혁명 성공에서 한국 독립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선인들의 독립운동에 영혼을 불어넣어 준 중국의 그 공화혁명에 대하여 오늘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천 년 동안 지속적으로 중국의 문화와 정치를 지배해 온 황제체제(왕정)는 어떻게 하여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었을까? 우리 선인들이 '亞洲 대륙에 자유를 가져왔다'고 믿고 부러워하고 찬양했던 공화혁명은 그 전개과정에서 과연 자유를 획득했던가? 그렇지 못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 선인과의 관련으로서도 우리는 이 공화혁명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없을 수 없다.
목차
Ⅰ. 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탄생1. 신해혁명, 중국 공화혁명의 시작
2. 신해혁명 발발의 배경
3. 신해혁명의 전개구도
4. 신해혁명의 성격
5. 신해혁명의 평가
6. 신해혁명 100주년
Ⅱ.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동아시아 민중 운동
1. 민족자결주의와 3․1운동
2. 5․4운동
3.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
Ⅲ. 동아시아 3국의 교과서 분석
1. 일본
2. 중국
3. 한국
4. 대만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1912년 1월 1일에, 남경에서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의 취임식이 있었다. 중국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속되어 왔던 황제지배체제(왕정)를 거부한 공화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전년 10월 10일 호북성(湖北省) 무창에서 일어난 신식 군대의 반란이 남방의 여러 성으로 파급된 결과였다. 이는 중국의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일본에게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중국땅으로 망명을 나섰던 한국인들이 이러한 상황을 그저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길 수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가 있는 안창호에게 중국의 국내 사정을 정기적으로 보고해 오던 조성환은 중국에서의 새로운 공화국 탄생을 눈으로 보면서 감격하여 중국에서의 공화혁명 성공에서 한국 독립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였다.그런데, 우리의 선인들의 독립운동에 영혼을 불어넣어 준 중국의 그 공화혁명에 대하여 오늘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천 년 동안 지속적으로 중국의 문화와 정치를 지배해 온 황제체제(왕정)는 어떻게 하여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었을까? 우리 선인들이 '亞洲 대륙에 자유를 가져왔다'고 믿고 부러워하고 찬양했던 공화혁명은 그 전개과정에서 과연 자유를 획득했던가? 그렇지 못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 선인과의 관련으로서도 우리는 이 공화혁명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없을 수 없다.
<중 략>
여기서 운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민이며, 33인의 대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이들을 지칭하는 부르주아민족주의자는 단지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자로만 묘사되어 있다. 운동 주체에 대한 이같은 시각은 분명 북한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 운동 후 조선에 무산계급 정당이 출현하여 민족해방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한 것도 북한의 견해와 가깝다.그럼에도 운동의 명칭은 북한 학계의 "3․1인민봉기"를 따르지 아니하고 남한 학계의 "3․1운동"을 취한 점, 평양이 아니라 한성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하고 유관순의 항거를 서술한 점, 3․1운동 기간에 조선민족주의자가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워 반일투쟁의 영도기관으로 삼았다고 한 점은 남한 견해에 따른 것으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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