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사] 문화대혁명
- 최초 등록일
- 2003.05.30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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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혁은 결코 문화적이었다거나, 낭만적이지 않았으며, 진보적인 역사운동이라든지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문혁이후 쏟아져 나온 문학에서도 볼 수 있는 당시 시대상은 암울, 절망 그 자체였다. 정말로 우스꽝스러운 집단에 의해 희생된 중국인이 불쌍하고, 그 운명조차 받아들이는 인민들에게 동정을 금할 길이 없다. 모택동과 그의 세력들 때문에 경제 후퇴, 문화적인 후퇴등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 중국은 후퇴를 하였다. 또 역사적 유물(고서, 왕릉, 건물등)을 파괴시키고 전통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변해가고 있다. 자신들의 쓴 운명을 받아들이고, 좋은 지도자와 근면한 인민들로 인하여 사회는 진보하고, 국가는 발전하고 있다.
목차
1. 시작하는 글
2. 문혁 이전의 중국
3. 문혁의 배경
4. 문혁의 개시
5. 문혁의 성질
6. 문혁 그후
7. 잃어버린 세대
8. 모택동
9. 내가 본 문화대혁명
본문내용
과거의 중국과 오늘의 중국사이에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커다란 골이 존재한다. 이는 ‘문화 대혁명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오늘의 중국 대륙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966년 5월에서 76년 10월에 걸쳐 중국에서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던 문화대혁명은 정치적 성격을 띤 문화운동으로 ‘문혁’이라 줄여 부르기도 한다. 문혁은 그 발발 과정부터, 경과, 종말이 거의 밝혀졌다. 한동안 중국인들은 이 역사적인 세월을 기억해서 되살려내는 것을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했다. 당시 문혁의 중추세력이었던 10대 중반의 홍위병(紅衛兵)[1]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이제 중국의 각 조직 책임자급으로 성장해 있지만, 그들의 한때가 황폐했던 만큼 지도력의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큰 역사적 공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10억 인구가 정말 바보같이 휩쓸린 일종의 광풍을 10년간 지내며 중국은 황폐할 대로 황폐해 졌다. 중국의 온갖 역사적 유물 등은 불살라졌다. 교수란 직업이 멸시 당하였고, 대학교육은 10년간 사라진다. 어른이 아이에게 수염을 뽑히는 등 정상적인 국가운영체제는 무너지고, 오직 모택동(毛澤東) 일인의 가치체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참고 자료
조기정 <중국 문화대혁명의 이해>
경향 신문
대교출판 <365 세계 역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