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주이주민들과 중국인의 충돌
2. 조선일보의 오보로 조선 내 중국인 참변
3. 중, 일 그리고 만주 조선인들의 갈등
4. 일제의 치밀한 계략
본문내용
1931년 7월 2일 중국 지린성 장춘현 만보산지역에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 사이에 농지 수로 문제로 충돌이 일어났다. 중국인 중개업자인 학영덕은 1931년 4월 16일 이통하 동쪽 삼성보 일대 황무지 15만평을 중국인 소한림 등 12가구에게 조지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 조항 중에는 장춘현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무효라는 조항이 있는데, 학영덕은 중국당국의 정식승인 없이 조선인 이승훈 등과 재계약을 맺었다. 이승훈 등은 만주각지에 흩어져 있는 조선 농민들을 만보산 농장으로 불러들이고 곧 수로를 개간하기 시작하였다. 조선농민들의 수로 건설로 농지가 침해될 우려가 있었던 중국인들의 항의가 있었고 중국 경찰이 조선 농민들에게 떠나라기 통보 했으나 수로개간을 강행하여 6월말에는 완공 단계에 이른다. 강의 범람이 우려된 중국인들은 7월 2일 수로공사 현지로 달려와 수로를 매몰한다. 조선 농민과 중국인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였고 중국과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총격전도 벌어졌다. 당시 일본은 조선인 보호를 구실로 무장경찰 60여명 동원해 38발을 발포했는데 중국인중 약간의 부상자 외에는 별다른 인명피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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