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대외관계 - 거란,여진과의 전쟁
- 최초 등록일
- 2014.01.12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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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거란과의 항쟁
2-1. 거란의 성장과 고려의 대(對)거란관
2-2. 거란의 1차 침입
2-3. 거란의 2차 침입
2-4. 거란의 3차 침입
2-5. 전쟁의 결과
3-1. 여진의 성장
3-2. 동북9성 전쟁
3-3. 금의 건국과 관계의 변화
본문내용
1. 서론
후삼국의 통일 이후 태조 왕건은 고구려의 계승을 강조하며 서경을 중시하여 북방으로의 팽창을 항시 염두에 두었다. 동시기, 중국 대륙은 당나라의 붕괴 이후 한족계 군벌국가들의 난립과, 이러한 상황을 이용한 북방 유목민계 국가들의 흥기로 통일 왕조가 건설되지 못하고 각 지역 왕조들간의 대립으로 인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동북아에 절대적 패권국가가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려는 운신의 자유를 얻어 북방으로의 팽창을 꿈꿀 수 있었고, 북방에 있던 유목민계 국가들은 한족계 남조 국가들과 중국 대륙의 지배권을 놓은 결전 이전에 후방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고려를 회유하거나 복속시킬 필요가 있었다. 반면에 남조의 한족계 국가들은 북방 유목민계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해 그 후방에 위치한 고려와 연합을 하고자 하였다. 또한 유목민계 국가라 총칭하여도 대표적인 두 민족, 즉 거란과 여진의 이해가 상충하였으며 이들은 또 각기 다른 관계를 고려와 맺어갔다. 고려는 동북아 세계 역사의 이 거대한 흐름의 여파 속에서 복잡한 외교와 전쟁의 무대에로 휩쓸려 갈 수 밖에 없었다.
<중 략>
고려는 9성 지역을 여진에 반환하고 모든 병력을 철군시켰으며 기미주 제도를 폐하여 천리장성 너머 여진 부족에 대한 완안부의 지배권을 사실상 인정하였다. 완안부는 갈라전 지역을 확보하였으며 여진 부족들에 대한 고려의 개입을 중지시켰고, 또한 고려를 상대로 사실상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에서 전 동여진 부족들에게 지도권을 인정받았다. 이로써 고려는 서북면에 이어서 동북면에서마저 북진의 야망이 좌절되었고, 완안부는 외세로부터 자유로이 여진을 통합할 기틀을 마련하였다.
3-3. 금의 건국과 관계의 변화
1109년, 전쟁 종결 4년 후 우야소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 아골타가 여진의 수장이 되었다. 전 생여진을 통합한 아골타는 1114년 거란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켜 장응관들을 처단하고 숙여진의 중심부 황룡부를 함락시켰다. 이리하여 숙여진마저 통합한 아골타는 혼동강에서 거란의 대군을 격파하고 1115년 금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1122년 아골타는 연경을 함락시켰고, 아골타를 계승한 금의 태종은 1125년 마지막 황제 천조제를 생포함으로써 요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참고 자료
이병희(2002).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3 고려.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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